유기농이란 말 한마디에
유기농이란 말 한마디에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0.11.1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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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주말 농장하는 서울 친구가 있습니다. 자기네 밥상만은 건강식으로 책임져야 한다며 주말농장을 하게 된 친구입니다. 2000여 평 넓은 밭머리에 컨테이너도 앉혀두고 본격적으로 주말마다 내려와 씨를 뿌리고 풀을 뽑곤 했습니다.

농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친구, 헐렁한 바지에 장화를 신고 긴 장대를 끌며 밭으로 가는 그녀가 낯설기만 합니다.

“장대는 뭐하러 가져가니?”

“응, 장대 끄는 소리 듣고 뱀들이 도망가는 거야.”

하여튼 대견한 친구입니다. 밭에는 이것 조금, 저것 조금, 과일나무와 채소와 산나물까지 정말 없는 것 빼고 다 있습니다. 강원도까지 원정하여 사 왔다고 자랑하는 곰취도 있고 울릉도에서 가져왔다는 이름도 모르는 산채도 있었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욕심이 과해 보였습니다.

모든 작물들이 잡초랑 같은 대우를 받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일절 농약을 쓰지 않는 터라 이름이 농장이지 그냥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묵정밭과 다름 없이 보였거든요.

배추와 무도 김장철이 다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어리디 어린, 그나마 벌레들이 다 갉아먹어 구멍이 무늬처럼 뿅뿅 뚫린 이파리들로 참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유기농이야, 가져가서 한번 해 먹어 봐.“

친구는 어린 배추와 무와 갓과 파가 든 자루 네댓 개를 안겨줍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랍니다. 벌레들이 먼저 맛본 것들.

내가 농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뽑아오지 않았다면 미련 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고도 남을 것들을 소중하게 손질합니다. 벌레 먹은 잎들, 잠깐 망설이기도 했지만 다 버릴 수는 없어 많이 갉아먹은 겉잎만 떼어내고 말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특별한 양념 없이 그저 담근 김치가 왜 이렇게 산뜻하고 맛있는 겁니까? 약간 질긴듯한 씹을 때의 식감이며 고소하고 진한 맛이 포기 배추에 물린 내 입맛을 흔들어 놓습니다.

사람들은 건강을 염려하며 유기농을 말합니다만, 내가 어릴 때 먹던 추억의 맛, 언제부턴가 잃어버린 날것의 맛이 유기농 작물들은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음이 놀랍습니다.

새삼스럽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유기농 유기농 하는 것이구나!….

내가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부지런히 젓가락질하자 가족들도 덩달아 젓가락이 바쁩니다. 김치 하나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포만에 젖은 밤입니다. 먹거리에 대해 생각이 깊어집니다.



*장민정 2002년 시평으로 등단. 경기신인문학상, 토지문학상 수상. 시집 `바라보면 온몸에 물이 든다', `느티골 뿌리들 환하다', `나는 설렌다', `4남매 공저 고향의 강'등이 있다. 현재 잉근내동인문학 시창작교실 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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