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0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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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익 교 <전언론인>

오늘은 밭매느라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직 여름에 문턱이라고는 하지만 한낮에 열기가 올라오는 지열이 만만치 않습니다.

거기다 호미 한자루를 벗삼은 단조로운 일이라 지루함이 지겨울 정도입니다.

농촌 일중에서도 가장 힘드는 일을 친다면 단연 밭에 풀뽑는 일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풀과의 전쟁"이라고 까지 하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밭에 풀뽑는 방법은 별로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호미 하나면 되니까 삼국시대도, 조선시대도 지금과 같았을 겁니다.

오늘 아주 원초적인 일을 한 셈이지요.

일을 시작 하기 전부터 마칠 때까지 내내 제초제를 뿌릴까 말까로 갈등을 했습니다.

쭈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하는 것 보다 제초제 뿌리면 큰 힘 안들이고 풀을 없앨 수 있으니, 제초제의 유혹은 당연 한 것입니다.

남들이 본다면 사서 고생한다고 하겠지요.

사실 요즘 농촌에서 제초제는 상비약이나 같습니다. 지긋지긋한 매기보다는 그저 약통 메고 한바퀴 돌면 해결 되니까요.

갈등이 심했습니다. 당장 호미 팽개치고 제초제를 쓰고 싶은 충동이 수없이 밀려 왔으나, 자연과 어우러진 삶의 주변에 역한 제초제 냄새를 풍기기가 싫었습니다. 비록 잡초지만 초록의 싱그러움에 죽음의 포말을 덮어 쒸우기가 더더욱 싫었습니다. 허리, 무릎이 결릴 때마다 앞산에서 우는 뻐꾸기가 호미를 못 놓게 했고, 느닷없는 꿩의 비명 같은 울음이 힘을 실어 줬습니다.

2년전만 하더라도 넓고 긴 밭고랑에 홀로 일하는 것이 세상과 동떨어진양 고독했습니다. 절절한 외로움에 우울하기조차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시간따라 계절따라 변함을 반복하는 자연의 순리에 따를수 밖에 농부의 삶에 몸과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일을 하다보면 자연히 지난일들이 떠올려 집니다. 특히 복잡한 사회속에서 필연적으로 엮였던 인간관계가 가장 많이 회자 됩니다. 그중에서도 옳건 그르건 나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다쳤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때 그렇게 안했어도…" 넉넉하지 못했던 마음씀씀이가 되돌아 보면 다 후회거리 입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합니다. 그렇다고 먹고 살기가 넉넉한 것도 아니고 생활이 재미난것도 아닌데 그저 편안합니다. 동이 트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먹고, 일하다 해지면 들어와 졸리면 자는 것이 반복되는 이 생활이 즐겁습니다. 눈이 감깁니다. 500평이나 되는 밭에 풀을 뽑은 덕에 잠이 쏟아 집니다. 오늘 '방아다리 편지'는 여기서 줄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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