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쪼개기
나라 쪼개기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11.18 17: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승자가 있지만 아직 승자가 정해지지 않았다. 이상야릇하다. 남의 나랏일이기에 강 건너 불처럼 구경하고 있지만 참 희한하다.

트럼프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트럼프 대 바이든 = 7,263만 : 7,860만이면 48% : 52%로 표를 나누어 가졌다. 우리나라의 4. 15 총선 49:41보다 더 적은 표차로 트럼프가 낙선했다는 말이다. …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선거개표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하라고 선동하고 있다. 이긴 선거를 도둑질당했다고 강변하고 싸워서 원상복귀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선거에는 졌지만 미국을 반으로 쪼개는 데는 성공했다. 그나마 내란상태로 빠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보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지자들에게 계속 문제를 제기하라고 함으로써 나라를 반으로 쪼개고 있는 트럼프에 어떤 평가를 할 수 있을까? 한심하다.

동기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는다. 순수한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 노니 잇속을 따질 일도 없어서 스스럼없고 즐겁다. 누군가 정치 이야기를 꺼낸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대부분 한쪽으로 쏠려가는 것 같지만 한두 명이 반론을 제기하면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누군가가 정치 이야기하지 말자고 서둘러 좌석을 정리하지만 모처럼 즐거웠던 분위기가 싸해진다.

비슷한 전공의 교수들이 모여 저녁을 먹는다. 사회, 국가, 정치, 경제 등의 이야기로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비슷한 사람들이니 서로의 입장만 확인하는 수준이다. 2차 자리에서는 이웃 단과대학 교수들과 자리를 함께 하여 자리가 꽤 커진다. 친한 사이라 스스럼없이 합석을 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간다. 남자들의 술자리가 의례 그런 것처럼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두 편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인다. 이 싸움은 상당히 치열하다. 결국 얼굴을 붉히는 수준까지 가야 누군가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싸움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으며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도 나라가 반으로 쪼개져서 항상 논쟁 중이다.

정치논쟁은 물리적 폭력을 동원하지는 않고 말로 싸운다. 말로 싸우려면 논리가 있어야 한다. 근거와 증거를 들이대고 나름대로 분석도 해가면서 논리싸움이 치열하다. 이 논리는 누가 제공할까? 얘기를 들어보면 자신이 생각해낸 것은 별로 없고 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소스는 정치인들이거나 이를 퍼 나르는 언론이다. 정치인과 언론이 국민의 싸움을 독려하고 있는 꼴이다. 정치나 언론에서 제공하는 논리에 국민은 익숙해져 있다. 국민은 이들의 논리를 체화하여 자기 논리로 생각한다. 곧 특정 신념이 체화되어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있는 상태다 현재 대한민국은 체화된 논리로 무장한 두 편의 국민이 박 터지게 싸우고 있다.

그 논리를 제공한 정치인들은? 주간에 서로 삿대질을 해가며 고성으로 싸우다가 저녁이 되면 이해관계에 따라서 적과 함께 저녁도 먹고 술도 먹으면서 화기애애하게 지낸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자신이 제공한 논리와 정반대의 논리를 주장하는 정파로 옮겨가서 이제까지와는 정반대의 논리를 전파한다.

그걸 퍼 나른 언론들은 특정 정파의 정권 탈취 여하에 따라서 논조를 바꿔가면서 예전에 했던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는, 아니 오히려 정면으로 배치되는 논조의 이야기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당당하게 주장한다. 때로는 비판하다가 아부하다가 다시 비판하다가 한다.

국민은 한 번 꽂힌 이야기에 심취되어 오늘도 서로에 대해 비난을 일삼으며 싸우고 있다. 정치인들은 치졸한 정치를 하고 있지만 국민을 아군과 적군으로 쪼개는 데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선거에 졌지만 국가를 쪼개기에 성공한 트럼프, 틈만 나면 나라 쪼개기에 이력이 난 우리의 정치와 언론, 별반 다른 것 같지 않다.

/충북대 철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