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
기다림의 미학
  • 김진균 청주중학교 교장
  • 승인 2020.11.17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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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진균 청주중학교 교장
김진균 청주중학교 교장

 

며칠 전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26~7년 전 교사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임시절이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정책적으로 공업계열을 키우려고 군 단위의 인문고나 농업고를 농공고나 종합고로 개편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도 인문고였지만 전자과가 생겼고, 전자과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게 되었다. 그 당시 전자과 학생들은 3학년 2학기에 현장실습을 나가야 했다. 그런데 두 학생이 실습 중도에 학교로 되돌아오는 일이 발생했다.

담당 교사는 이 학생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두 학생 모두 평범하지는 않다며 실습과정에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며 이들을 받아 주는 곳이 없다는 거였다. 이 말에 문득 기업을 경영하는 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에게 여러 정황을 설명하고 실습기간을 마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학생들에게도 선생님 체면 봐서라도 실습을 잘 마쳐야 한다고 단도리를 했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 그 친구에게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답이 왔다.

퇴근 후 공장을 찾아갔다. 그 두 학생이 자취방에서 생활하다 보니 회사에 출근하지 않거나 지각을 밥 먹듯 한다는 거였다. 나는 친구에게 두 학생의 실습이 이 상태로 끝나면 나중에 사회에 적응이 더 어려울 수 있으니 다시 기회를 달라고 사정했다. 친구는 고맙게도 다른 방도를 찾아줬다. 회사 근처에 학생들의 자취방을 얻어주고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아이들을 깨워 함께 출근했던 것이다.

방황했던 자신의 학창시절 떠올라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고 그 친구는 나중에 얘기를 해 주었다.

현재 그 친구는 중견 중소기업의 CEO가 되었고 그때 실습 나간 아이 중 하나는 그 회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친구는 학생의 품성과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 주었고 학생은 그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성실히 근무해 지금은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성장했던 것이다.

우리는 기다림에 약하다. 자녀에게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요즘 코로나 19로 아이들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의 행동이 눈에 보이니 맘에 안 드는 것이 더 많고 짜증이 난다. 결국 아이와 갈등이 일어나고 그 갈등은 증폭되어 폭발하게 된다. 연연해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우리는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이 억지로 되는 것은 없다. 무리한 만큼 부작용도 클 수밖에 없다. 부모나 교사의 역할은 환경을 조성해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잠재력을 꽃 피우게 된다.

물론 일찍 피는 꽃도 있고 늦게 피는 꽃도 있다.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 보자.

언젠가 책에서 본 글이다. 사과를 양 손에 쥐고 있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물었다.

“네가 사과를 두 개 가지고 있으니 하나는 엄마를 줄래?”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왼손의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엄마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오른손의 사과를 다시 한 입 베어 물었다.

엄마는 너무 실망했다. “내 아이가 이렇게 욕심이 많은 이기적인 아이였나?”

그런데 잠시 후 아이가 왼손을 내밀며 말한다. “엄마 이거 드세요. 이게 더 맛있어요.”

그렇다. 이 아이는 욕심 많은 이기적인 아이가 아니라 진정으로 나눌 줄 아는 배려심 있고 사랑 가득한 아이였다. 만약 엄마가 양쪽 손의 사과를 베어 무는 아이에게 곧바로 “너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니?”라고 화를 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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