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안부
뒤늦은 안부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11.17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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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녀의 학창시절과, 연애사와, 하물며 가정사까지도 말이다. 그녀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시절 내내 모범생으로 학급 실장도 도맡아 했으며 서울의 유명한 대학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대학 시절도 마찬가지로 최고의 성적을 받았다.

그동안 수없이 겪어 봤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들이 부재한 뒤에야 관심을 갖는다. 뒤를 돌아다보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미련한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오늘도 또 한 사람을 잃고서야 부재한 그를 추억하고 있다.

이태 전에도 그랬다. 그녀와 나는 그리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사도 나누며 노래방도 같이 가본 사이였다. 그녀의 집이 남편의 가게와 지척에 있었고, 그녀의 남편도 우리 가게에 종종 놀러 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아담한 체구였는데도 어르신을 돌보는 일을 했었다. 얼굴에는 그늘이라고는 없어 보였던 그녀가 어느 날 우울증이라고 했다. 우울증은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으니 전혀 예상도 못 한 일이었다. 나와 친해지고 싶었을까? 내 생일에 몸에 좋다며 감식초를 남편을 통해 보내왔다. 사실 나도 갱년기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던 때였다. 나와는 성향도 다르고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만약 그때 그녀를 불러내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며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더라면 그녀를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까. 언젠가 나에게 자신도 내가 들어간 단체에 들어가면 안 되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저 지나가는 소리로 “그러세요.”라는 말만 던지고 말았다. 얼마나 공허했을까. 겨우 손을 내밀었는데 무의미한 손짓이 되고 말았으니 더 이상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이 없었을 것이다. 그 무렵 나도 갱년기 우울증을 버텨내느라 고군분투 중이었다. 나름으로 고안해 낸 것이 여행이었다. 혼자 책을 싸들고 바닷가가 보이는 펜션에서 며칠씩 묵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남편을 통해 그녀 또한 우울증을 이겨내려 기도원에서 며칠씩 지내다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독교인이었으니 하나님을 통한 치유의 방법을 택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도 그녀도 치유가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무언가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을까. 삶을 포기하게 만든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함박눈이 내리던 날, 노량진 8층의 고시학원에서 유명강사의 수업을 듣는 500명의 학생 중, 오직 한 사람 `박지선'은 남산타워와 한강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일이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고는 고시학원을 나와 버리고 말았다. 큰 나무일수록 큰 그늘을 만든다고 했다. 언제나 해맑던 그녀였기에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자신의 얼굴을 사랑했던 그녀였다. 예뻐서가 아니라 `독특한'모습이었기에 사랑했다는 그녀가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 언제나 밝게 웃음을 주었던 모습이 너무도 아프다.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웃음 뒤편에 가려진 슬픔이 너무도 깊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녀가 우리에게 그토록 자신의 아픔을 감춘 것이 말이다. 마른 낙엽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떨고 있다. 떨어지지 않으려 겨우겨우 매달려 있건만 바람은 왜 그리도 매정할까.

이제는 아프지 않을까. 나는 또 이렇게 뒤늦은 안부를 물어본다. 부디 그곳에서는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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