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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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7.06.0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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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과 기자만 문제라고
권 혁 두<편집국부국장>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보다 선진화한 방식으로 지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과 성원에 감읍해야 할 상황이지만, 감사는커녕 언론탄압으로 몰아가는 형국이니 기이하다.

대통령과 기자들, 양자중 하나는 후진성을 지향한다는 얘기가 된다. 정부가 10만부나 되는 홍보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며 국민 설득에 진력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쪽이 대세인지 가늠은 되지만, 이 시기에 기자실 통·폐합이 국정의 핵심과제로 떠오른 것이 정상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 격론의 과정에서 대통령이 '담합의 소굴'로 지목한 기자실이 새삼 주목되고 있다. 솔직히 말해 '기자실의 추억'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조치에 대해 찬성여론이 만만찮은 것도 기자실의 우울한 전력 때문일지 모른다.

대통령 말마따나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기사를 담합하던'시절이 있었다. 중앙의 부처나 기관의 기자실은 겪어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지방의 기자실에서 기자들은 그냥 죽치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 일부 기자들이 고스톱이나 카드를 치며 시간을 보내다 출입처에서 제공한 홍보자료를 들고 귀사해 베끼던 최악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요즘 젊은 기자들에게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얘기일 터이다.

당시 기자실이야말로 답합의 현장이었다. 기자간 답합이 아니라 출입처와 기자들의 묵시적 담합이었다. 출입처 홍보부서는 기자실에 판을 벌려주고 간혹 뒷돈을 대주거나 동참까지 해가면서 기자들의 눈귀를 막고 발을 묶었다. 기자들은 비판성 기사나 발굴기사 대신 보도자료 베끼기로 보답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칼럼을 쓰고 있는 기자도 그 시절에는 한통속이 돼 기자실이 오명을 쌓는데 기여했다.

공무원노조 출범과 함께 지자체 기자실이 도마에 올라 폐쇄와 재설치의 곡절을 겪으며 그릇된 관행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자실의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며 부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과거 기자실의 탈선을 들춘 것은 기자실은 언론이 일방적으로 수혜를 누리는 시설이 아니라 출입처의 이해와도 만나는 곳인 만큼, 그곳의 운영에 대해서도 책임이 균분돼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

기자실은 기자들의 활동공간일 뿐 아니라 해당기관이 정책홍보나 시중정보 취득, 대언론 로비 등 이해를 추구하는 업무공간 구실도 하고 있다. 기자실이 가끔 삐걱거리는 것은 기관의 이 같은 기대가 빗나가는 경우다.

비판기사라도 잇따라 터지면 '밥 사고 뺨 맞는 격'이라며 무용론이 제기되곤 한다. '죽치고 앉아 보도자료를 가공하고 기사를 담합한다'는 기자들에 대한 대통령의 조롱도 같은 맥락으로 읽혀진다.

기자들이 기자실에 모여앉아 쓸데없이 보도자료를 분석하고, 자료를 제공한 기관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기사를 작성한다는 주장에는, 기자실이 정책홍보가 아닌 분석과 비판의 산실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담겨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기자실 통·폐합 조치가 대통령이 일갈한 담합이 아닌 또 다른 담합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자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이리저리 '가공'이 가능한 시원찮은 보도자료를 만들어낸 기자실 운영주체의 능력도 문제 삼는 균형감각이 실종된 것도 아쉽다.

도내 일부 지자체가 시·군정을 비판하는 신문사에 대해 홍보광고를 끊는 등 언론 재갈 물리기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를 본받아 '언론사 홍보광고 선진화 방안'을 추진중인지 모르겠지만, 주민의 혈세가 투입된 광고로 언론을 농단하며 실정과 허물을 감추려는 작태가 치졸하다 못해 처량하다.

어디부터 개혁을 하는 것이 옳은지 대통령에게 묻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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