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찬란한 이유는
가을이 찬란한 이유는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0.11.1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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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어느새 바람결에 겨울이 묻어난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이 가을 발걸음을 재촉하고 그 재촉에 가을이 뒷모습을 보이며 멀어지고 있다. 나의 올해 가을은 눈부셨다. 쉬어家에서 자연이 그려내는 가을 풍경화를 관람료 한 푼 지불하지 않고도 맘껏 감상하는 풍요를 누렸다.

자정 넘어 가게 문을 닫고 쉬어가에 들면 하늘에선 별들이 그림을 그리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위로를 하며 반겼다.

코스모스들이 청량한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며 맵시를 뽐내고 언덕 아래 논배미에서는 점점 진한 황금색으로 채색하며 벼들이 익어갔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하루하루 다른 모습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디 자연이 붓질하는 가을그림이 그뿐이랴.

이른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면 엷은 햇살은 안개로 동심원을 그리며 산자락 끝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을 품에 안았다.

그러다 점점 짙어지는 햇살에 살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안개의 풍경은 내가 올가을 감상한 가을 그림 중 최고의 풍경화였다.

자연이 그리는 그림은 마음만 열면 언제나 아무 때나 편하게 마주할 수 있어서 좋다.

쉬어가 주변 나무에서 떨어진 곱게 물든 단풍잎들을 모아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언뜻 보면 예쁘기만 한 잎들이 가만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조금씩 상처가 있거나 고운 빛 사이에 얼룩얼룩 옹이처럼 검은 점들이 박혀 있다. 아예 잎 전체가 구멍이 숭숭 상처투성이인데도 너무 곱게 물들어 안타깝기도 애잔하기도 했다. 지금껏 멀리 바라보며 상처를 보지 못하고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감탄을 했던 것이다.

주방에서 도자기 그릇을 꺼내왔다. 몇 해 전 이천 도자기축제에 갔다가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빛이 맘에 들어 사온 그릇이다.

처음 도예가의 손끝에서 작품으로 빚어졌지만 어떤 연유인지 뜨거운 가마에서 상처를 입고 퇴출된 작품이었다.

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헐값에 버림받아 내 손에 들려왔지만, 그릇은 어떠한 음식을 담아내도 곧잘 어울려 나에게는 멋진 작품으로 요긴하게 쓰이는 그릇이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담아내듯 단풍잎들을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꽃밭에서 데이지 세 송이 와 보라색 수레국화 한 송이를 꺾어다 올려 주었다. 덕분에 올해 나의 가을은 아름답고 행복했노라고. 가을 내내 마음을 설레게 해준 나무들에 나의 고마움과 경의를 표했다.

가을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나무가 지닌 본연의 색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찬란함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잎들의 상처들은 나무들이 견뎌낸 인고의 흔적일터였다.

새싹을 올리고 싱그러움을 뽐내던 그 여름날에도 나무들이 견뎌야 하는 고난의 시간을 나는 알지 못했다. 때론 뿌리째 흔드는 강한 비바람에도, 인정사정없이 갉아먹는 벌레들에게도, 온몸을 보시하듯 한자리에 서서 나무들은 모든 어려움을 묵묵히 견뎌낸 것이다.

그런 험난한 시간을 지나 보여주는 본연의 모습이 이 가을 어찌 찬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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