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도의원→군수→10년 만에 다시 평범한 농부로
농부→도의원→군수→10년 만에 다시 평범한 농부로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0.11.15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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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어떻게 지내십니까-유영훈 전 진천군수
퇴임후 고향 초평 양촌마을서 농사 지으며 소 키워
요양원 운영 아내 위해 운전… 어르신들 출퇴근 도와
노후 준비 못해 가족들에 미안 … 가정에 충실 하고파
친구 외 주민들과 어울리며 고향에 스며들려 노력<
“주어진 삶 아닌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삶” 묵직한 울림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고향인 초평면 양촌마을에서 평범한 농부로 돌아간 유영훈(64) 전 진천군수.

그의 하루 일과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소 밥 주는 일로 시작한다. 집 뒤편에 한우 100마리를 키울 수 있도록 현대식으로 지은 축사가 유 전 군수의 일터다. 그 많은 소를 직접 관리하고, 송아지 받는 일까지 하다 보면 하루가 언제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고 한다.

“10년 만에 다시 소 키우는 일을 하니 일이 설었는데 이제 익숙해졌어요.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가량 소 밥 주고 관리한 뒤에야 아침 식사를 합니다. 시골 생활이란 게 늘 같은 생활이지요.”

정치에서 물러난 대부분의 인사들이 운동이나 취미 생활로 소일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달리 유 전 군수는 고향에서 소를 키우며 보통사람으로 살고 있다.

지난 2015년 11월 지인들이 마련한 군수 퇴임식에서 “이제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초심으로 돌아가 고즈넉한 고향 마을을 지키며 소를 키우고 밭일을 하겠다”고 했던 그의 말이 고향에서 고스란히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소 키우는 재미가 있어요. 소도 주인과의 연대감을 느끼고 있어야 건강하거든요. 소 밥을 주고 건강상태를 돌보는 일이 주인하고의 연대감을 키우는 일입니다. 요즘은 새끼를 낳는 소를 위주로 키우다 보니 소가 너무 살쪄도 안 되고 너무 말라도 안 됩니다. 그런 소소한 일에서 재미를 느끼죠.”

소 키우는 일 외에도 하루 중 중요한 일과가 사회복지사인 아내를 돕는 일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요양원을 운영하는 아내를 위해 차량 운전도 직접 한다. 동네를 돌며 어르신들을 요양원에 모셔다 드린 후에야 잠시 혼자만의 여유 시간이 찾아온다.

“정치하면서 가정에는 빵점이었어요. 아내가 오래전부터 사회복지 일을 하고 싶어했는데 저 때문에 못했어요. 아내도 몸이 좋지 않아서 일하는 것에 반대했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도록 아내 일을 돕고 있어요.”

아내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고 한다.

“노후 준비를 못 했어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요. 이제 가족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양촌마을은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사는 고향인데, 내가 할 일은 가정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나 싶습니다.”

정치에서 물러난 지 5년째. 정치에 미련이 클 법도 한데 유 전 군수는 오히려 정치와는 일정한 선을 두고 사는 모습이다. 인터뷰 요청에 내내 부담스러워하던 그는 “이곳저곳 다니면 정치적인 오해를 받을까 봐 가능한 고향에서 머문다”며 고향인 양촌마을로 초대했던 것이다.

“얼굴을 비추는 게 여러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를 불러오기도 하잖아요. 이따금 만나는 친구 외에는 동네주민들과 어울리며 고향에 스며들려고 노력합니다. 퇴임하며 진천군이 발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겠다는 그 마음입니다.”

1991년 지방자치시대의 도래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그지만 정치 인생에서 기쁘고 아린 기억이 겹쳐 있다. 농부에서 도의원이 되고, 군수가 되고, 다시 농부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오늘의 그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시대가 되면서 당시 무보수직이었던 도의원을 2번 했는데 도의원으로의 한계가 느껴졌어요. 이후 군수에 도전해 두 번의 좌절 끝에 3번째 당선됐는데, 경제기반도 필요하고, 정치적 꿈을 실현하려면 군수가 나을 것 같았어요. 당선 후에는 16년 지역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을 진천군을 위해 쏟았습니다. 3선 군수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것이 군민들에게 가장 미안하지요.”

지방정치의 핵심 인물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가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유영훈 전 군수. 그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희망과 빛이 보인다”는 것이다. 주어진 삶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을 강조하는 말에서 묵직한 울림이 전해진다.

/연지민기자
annay2@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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