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치료해주는 그런
슬픔을 치료해주는 그런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0.11.15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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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가끔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다. 뭔가 모르게 위축되고 영혼이 쪼그라들어 당장 걷는 것도 못할 것 같은 상실감이 찾아올 때가 있다. 특히 이렇게 단풍들어 낙엽으로 떨어지는 나무의 알몸을 볼 땐 더욱 그렇다. 한마디로 슬프다. `슬프다'를 중얼거리면 정말 슬픈 감정과 단어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이란 단어 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송곳처럼 튀어나와 있는지. 슬픔은 마치 피부의 살갗이 벗겨져 공기만 스쳐도 따끔거리는 상태를 연상시킨다. 심리 전문가는 결핍감이 심해질 때, 돌이킬 수 없는 실패, 삶 속의 아쉬움 등에서 슬픔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슬픔을 갖고 있나 보다. 이것을 프랑스 철학자 베르트랑 베르줄리는 “슬픔을 통해 철학하기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슬픈 날들의 철학>을 통하여 무한에 대한 열망의 상실에서 비롯된 슬픔 속에 또 다른 얼굴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슬픔에 관한 철학하기가 가능하다며 슬픔에 잠겨 있노라면 미처 알지 못했던 경이로운 삶의 국면이 보인다고 한다.

그림책 중엔 슬픔을 치료해주는 책이 있다. <슬픔을 치료해 주는 비밀 책>이다. 읽어보니 어른에게 더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에 나오는 일곱 가지 슬픔을 치료해주는 처방을 그대로 따라하다 보면 슬픔 때문에 생긴 불면증도 없어질 것 같다. 베르트랑의 말처럼 책을 찬찬히 읽다 보면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는 느낌이다. 자, 그럼 이제 막 사춘기 언저리에 있는 아이와 그녀의 이모가 읽는 슬픔을 치료해주는 비밀 책에 어떤 처방이 들어 있는지 보자.

주인공 롤리는 혼자서 한 달 동안 제인 이모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부모님이 떠나자 슬퍼진다. 슬퍼하는 롤리를 위해 제인 이모는 <슬픔을 치료해 주는 비밀 책>이 있다며 낡은 상자에서 더 낡은 책을 꺼낸다. 낡아도 너무 낡은 책을 펼쳤다. 부엉이가 울기 전에 처방을 모두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주의 사항을 먼저 읽고. 첫 번째 처방, “사과주스 한 잔을 마시세요, 아주 천천히 맛을 느끼면서 마셔야 해요. 사과와 사과가 열려 있는 나무의 맛까지 느낄 수 있도록 말이에요.” 두 여성은 사과주스를 마시며 사과 잎사귀 맛과 사과 꽃향기까지 느끼게 된다. 두 번째 처방, “좋은 땅에 씨를 심으세요, 그리고 그 씨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몰래 뭔가를 해놓아야 합니다.” 세 번째, “가능한 한 아주 먼 곳까지 걸어가 보세요. 그리고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떤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네 번째, “야생 동물에게 먹이를 주세요. 그리고 야생 동물을 배고픔과 위험에서 지켜주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제인 이모에게 야생동물은 조카 롤리라며 롤리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롤리는 주머니쥐에게 먹이를 준다. 이것 말고 세 가지가 더 있다. 나머지 처방은 당신 상상에 맡긴다. 네 번째까지 들었으니 대충 어떤 것이 나올지 대충 견적이 나올 것이다.

슬픔을 치료하는 방법은 슬픔에 잘 참여하여 슬픔 뒤에 올 다른 감정을 맞이하는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슬픔을 잘 겪어내는 방법은 작은 것에 정성을 들이는 일이다. 그동안 갈증 채우기에 바빴던 주스 한 잔을 마시더라도 주스 한 잔이 되기까지의 오롯한 나무의 정성과 수고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슬픔은 또 다른 관점을 준다. 다섯 번째 처방이 백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편지와 함께 받는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선물 하나를 넣는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면 봉투에 넣어 줄 생각지도 못한 선물은 무엇인가, 알겠지만 당연히 돈은 아니다. 이런 고민만으로도 오늘은 슬프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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