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희의 엄마
한설희의 엄마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0.11.1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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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한국 근현대 사진의 궤적에서 가족이 어떠한 방식으로 보이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가족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되돌아 보게 하는 일이자 인간가족의 본모습을 엿볼 소중한 기회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그 이전부터 누군가의 가족이다. 그것이 자식과 엄마의 관계로는 제일의 가족의 얼굴이다.

사진 속으로 들어온 가족의 얼굴 중에서 엄마와 딸이 인생의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들이 곧 신의 사랑이라고 할 때 사진에 들어 있는 모든 것들이 멈춘듯한 그 순간들의 모습은 곧 고요함이다.

저세상으로 가신 어머니가 생각나고 그리워질 때 어머니의 가족이자 딸이었던 순간이 마치 살아 계시는듯한 환각으로 마구 스쳐 지나가고 있다고 하면 그 마음이 어떠했으리라 하는 것은 누구나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를 잃은 딸의 심정으로 말할 때 한설희의 `엄마'는 그러한 여정을 진솔하게 담은 사진이자 글이다. 그의 사진 엄마는 그렇게 함께 한 하루하루가 가족의 역사이고, 사진가의 삶이자 흔적으로 영원 속에 늘 살아있게 된다. 사진을 찍으면서 인생의 리듬을 찾아 호흡을 이어주는 사랑의 유희를 만끽한다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엄마는 딸에게 유난히 특별한 존재다. 그것은 혈육 그 이상의 이유이자 결과이며 목적이기에 한설희의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엄마는 한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결코 변할 수 없는 추억과 사랑의 끈으로서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는 그리움의 현실이다.

딸에게 엄마는 세상에 둘도 없는 울타리이자 한결같은 보호막이다. 한설희의 엄마라는 주제하의 모든 사진들은 엇비슷한 형태와 포즈아닌 포즈가 하늘 아래 유일하게 맺어진 관계로서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은연중의 일상에서 바라본 생생한 장면이어서 애틋하면서도 딸의 엄마에 대한 감정을 헤아릴 수 있게 한다.

딸의 나이 67세에 91세의 엄마를 사진으로 쓴 의지는 갸륵한 마음을 소유한, 참된 근성을 지닌 사진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기록이 아니라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엄마와 자신의 지극한 사랑의 일기로서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다.

경술국치 후 10년의 세월이 지날 무렵 함경도에서 태어난 한설희의 엄마는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온몸 바쳐 일하면서 살아왔다. 한설희의 엄마 박성보는 어렵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지극한 자식사랑으로 삶의 즐거움을 시를 쓰는 것으로 풀어냈다.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한설희는 사진집단 꿈 꽃에서 사진가의 꿈을 키웠다. 2011년 사진집 `엄마 사라지지마'를 출간하고 두 번째로 `엄마'를 세상에 내놓아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엄마의 가녀린 모습이 사뭇 애처롭기 그지없다.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급격하게 무너져 가족중심의 따스함이 사라진 지 오래인듯한 이 시대에 사진가 한설희의 엄마에 대한 사랑이 사진으로 세상에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해준 의미는 거역할 수 없는 혈연의식으로 영원할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5년여가 흘러간 지금도 한설희는 꽃 같던 엄마가 망가져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때, 노쇠하였어도 존엄을 유지하려는 모습에서부터 삶의 끝에 급격하게 무너져 무력해지는 그날이 눈에 어른거려 눈물이 흐른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오고야 마는 삶의 마지막 시점이 나에게도 언젠가는 올 과정입니다.' 엄마는 이 불효하고 못난 딸에게 사랑이란 커다란 선물을 주고 가셨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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