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판이 이렇게 만만해져서야
대선 판이 이렇게 만만해져서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11.15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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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 판도를 흔들고 있다. 그가 흔든다기 보다는 판이 그에게 휘둘려지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게다. 정치에 관심 없다는 그를 굳이 판에 끌어들여 경쟁 대열에 몰아넣고, 날개를 달아주고, 시상대에 서게하는 허구의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는 지난 주 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등을 하기도 했다. 이틀 후 다른 여론조사에서 다시 3위로 복귀했지만 야권 후보 1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줄곧 판세를 주도해온 이낙연·이재명의 민주당 쌍두마차에 제동이 걸리자 `윤석열 현상'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그가 내년 7월까지의 임기를 채울 지, 이후 정치에 입문할 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그에 관한 전망이 구구하게 양산되는 것은 무의미 해 보인다. 대신 수사력 말고는 어떤 능력도 검증된 바 없는 현직 검찰총장이 대선 판도를 좌우하는 현상이 바람직한 지는 곱씹을 필요가 있을 터이다.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이 무대를 장악하는 극적인 상황은 국가를 경륜할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첩첩산중을 넘나들어야 할 내치는 물론 국방과 외교까지 관장하는 자리에 요구되는 덕목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정의감 하나로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윤 총장은 대통령 감으로서 사험대에 올라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그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수사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당시 윗선의 지시를 거부하고 수사를 강행하며 특유의 소신과 배짱도 보여줬다. 당대 최고 검사라는 극찬을 들으며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에 발탁됐다. 그의 소신과 배짱은 정권의 그에 대한 평가가 최고에서 최악으로 급변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부각됐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아직 발현되지 않고있다.

`패 죽이는' 등의 공사를 가리지 않는 거친 화법은 품격과 거리를 둔다. 공격을 받으면 곧바로 같은 방식으로 응수하고야 마는 성격에서 투사적 기질은 엿보이지만, 사태를 관망하는 진중함이나 관용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도량은 보이지 않는다. “검찰의 주인은 국민이다”는 그의 외침에도 진정성은 없어 보인다. 국민이 아니라 권력에 종사해온 검찰의 어두운 전력에 대해 한마디 변명도 없이 검찰 총수가 당당하게 발설할 말은 아니다. 성찰의 부족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정치와 무관한 윤석열의 정치적 도약은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를 상징하기도 한다. 민주당은 싫지만 그렇다고 차마 국민의힘으로 갈 수는 없는 중도 무당층의 방황이 빚은 현상. 이 해석 앞에서 기성 정당들은 수치를 느껴야 마땅하다. 그런데 반응들이 안일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의 반응은 “1등 했으니 정치하면 되겠네”라는 조롱과 “우리보다 저 집(국민의힘)이 큰일 이네”라는 자기위안 일색이다. 자신들이 적폐의 핵심이자 반개혁의 수괴로 지목한 대상이 미래세대(20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정권의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떠올랐지만, “고건·황교안·반기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편안한 전망에 숨어 버린다.

자당 후보들이 모두 윤 총장 그늘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국민의힘의 반응은 신기할 정도다. 고작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며 정치적 공세에 동원할 뿐이고, 리더는 “윤 총장은 정부·여당 사람이고, 정부·여당에서 그 사람이 제일이라는 얘기”라는 모호한 해석을 내놓고 도망치기 바쁘다. “무기력한 야권의 지리멸렬이 윤 총장 대망론에 튼튼한 날개를 달아줬다”는 장제원 의원의 자기반성은 철저히 외면받는다. 현실을 마주할 용기도 없는 딱한 정당이다.

무려 대통령 선거판을, 불청객이 불쑥 들어와 휘젓고 다니는 만만한 동네로 만들어 놓고 이렇게 태평할 수 있을까? 감동도 기대할 것도 없는 `윤석열 현상'의 발원지는 양대 정당의 후안무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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