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가을은
지는 가을은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0.11.1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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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가을은 빛깔이 화려한 계절이다. 농부의 일 년 애씀이 담겨 있는 곡식과 과일이 있어 그러하고, 원색의 빛깔을 내 뿜는 국화와 코스모스가 있어 그러하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빛이 있어 그러하다. 거기에 형형색색의 단풍잎들이 더 해져 가을의 빛깔은 우리의 눈과 감성을 순식간에 홀린다. 그중에 으뜸의 빛깔은 나뭇잎들이 내뿜는 다채로운 색의 `단풍 꽃'이지 싶다.

단풍을 보면 늘 드는 경이로움이 있다. 꽃도 아니면서 어찌 저리 아름다운 색을 품을 수 있는지 자연의 이치가 참으로 신비스럽다. 봄날 연두색의 자그마했던 잎들이 아름다운 단풍이 되기까지 나무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답의 단초를 장석주 시인의 시그림책 <대추 한 알>에서 찾아보자.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시인은 붉고 먹음직스런 대추 한 알에서 봄부터 있었을 대추의 일생을 읽어 냈다. 그리고 화가 유리는 시인이 말하지 않은 은밀한 행간의 이야기를 가슴 저리게 또는 환희를 느끼도록 그림으로 해석해 놓은 `짧은 시에 담긴 길고 긴 이야기'가 있는 시그림책 <대추 한 알>이다.

대추나무의 결은 치밀하고 단단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나무다. 그 가지에서 새싹을 내밀고, 그 힘을 받아 핀 꽃은 둥글고 붉은 대추로 영글어 간다. 대추의 붉은 빛깔 너머에 있었을 지난 세월을 시인은 봤다. 겨울날 가냘파 보였을 옹이 진 가지를 봤을 터이고, 따스한 봄날의 햇살을 받고 있는 여린 잎을 봤을 터이고, 지난여름의 태풍과 밤이 길어지며 오는 추위를 견뎌내는 대추를 봤을 것이다. 그런 여정이 붉고 둥근 대추로 여물게 했을 거라 시인은 나지막이 읊조린다.

다채로운 빛깔을 품어 내는 단풍잎들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디작았던 여린 잎들은 햇살을 받아 초록을 만들어 내고, 초록은 뿌리에서 얻은 영양분과 함께 줄기를 튼실하게 키워 낸다. 그렇게 무성해진 나무들은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이리저리 흔들리게 하는 광풍을 이겨내며 자기만의 수형을 만들어 낸다. 가지가 부러지면 옹이가 있는 살짝 휜 나무로, 옆 나무가 그림자를 주면 햇볕을 향해 위로 곧게 뻗으며 제각각의 모양으로 만들며 자란다.

밤이 길어지고 온도가 내려가는 가을! 나무에 시련의 시작이라 할 수도 있는 계절이다. 기온이 내려가면 나무는 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 층을 만들어 뿌리에서 올라오는 수분의 흐름을 차단하여 잎을 떨군다. 이파리의 수분이 얼어 나무 전체가 상하게 되는 현상을 피하기 위한 자구책이라 한다. 그러니 시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구책은 나뭇잎들에 선물을 주기도 한다. 줄어든 수분은 초록빛을 띠는 엽록소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있었으나 보이지 않던 본연의 색소를 드러나게 한다. 노란 단풍, 붉은 단풍, 갈색 단풍 등 제 빛깔을 발하여 제각각의 단풍 꽃을 피우는 연유란다. 그러니 가을은 나무 생의 또 다른 아름다운 시절이라 할 수도 있는 계절이다.

저마다의 독특한 나무 모양, 저마다의 색깔은 지난한 세월을 무던히 견뎌내고 혼신을 다해 열심히 살아 낸 나무의 생에 주는 선물일 것이다. 그러기에 가을의 샛노랗고 새빨간 단풍 꽃들은 눈이 시리도록 아픈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주나 보다.

시인이 현상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 시상을 떠올리듯 우리네들도 시인의 눈으로 자연현상 그 너머에 있는 흔적에서 삶을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자연의 언어와 철학의 언어는 같다.'고 했듯 자연에서 우리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시인의 눈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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