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 올덴버그 (캐터필러 위의 립스틱)
클래스 올덴버그 (캐터필러 위의 립스틱)
  • 이상애 미술학박사
  • 승인 2020.11.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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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20세기 초 산업발전을 바탕으로 태동하게 된 팝아트는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의 영역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대중의 삶과 멀게만 느껴졌던 예술의 경계를 없애고 대중문화와 예술의 단합을 촉진하게 된다. 팝아트의 경향에 속한 여러 예술가들은 미술과 삶을 좀 더 유머러스하고 아이러니컬한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 예술가들 중 클래스 올덴버그는 일상의 오브제를 예술작품의 소재로 하여 모더니즘 조각의 형식에서 벗어나 대중친화적인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팝아트의 중심에 서게 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평범한 일상의 오브제를 거대한 스케일로 확대하여 제작함으로써 `낯설게 하기', 즉 데페이즈망 기법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하찮고 진부한 것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일깨워줌으로써 예술에 있어서의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였다.

<캐터필러 위의 립스틱>은 1969년 예일대학에 세워진 최초의 대형 소프트조각이다. 이 작품은 예일 대학의 건축대학 대학원생들과 몇몇 교수들에 의해 그들의 광장에 세워질 공공 조각으로서 정식으로 의뢰되어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당시 이러한 프로젝트에 의한 조각 작품을 설치하는 것은 매우 새로운 것이었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탱크와 유사한 캐터필러 트랙에 펌프로 인해 조절되는 립스틱이 결합된 모습으로 움직이는 조각으로 계획되었지만 1년여 만에 알루미늄은 녹슬고, 베니어합판은 산산이 조각나고, 립스틱은 낙서로 뒤덮인 흉물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려 결국 해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1973년 예일대학 미술관에 새로 온 관장 알랜 쉐스택(Allan Shestack)으로 인해 이 작품은 다음해 가을 모스 컬리지(Morse Colkge)로 옮겨져 전과는 다른 영구 보존할 수 있는 단단한 금속과 플랙시글라스로 재탄생되었다.

<캐터필러 위의 립스틱>은 당시 예일 대학이 여학생 입학을 처음으로 허용한 시기라 남성과 여성의 화합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립스틱의 붉은색은 예일대학의 경직된 제도적 학풍에 대한 도전으로서, 그리고 급진적인 행동을 촉구할 선동으로서 해석되기도 하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립스틱이 여성의 이미지와 남근의 형상을 포함한 양성적 의미로 생각하여 외설적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었다.

이상애 미술학박사
이상애 미술학박사

 

올덴버그는 “기념비는 항상 어떤 것의 기억인가? 햄버거는 기념비가 될 수 없는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예술이 관객에게 보다 더 가깝게 다가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평범한 일상의 오브제를 기념비화 하여 작품을 통해 예술과 환경 그리고 관객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삶 속에 예술을 끌어들이고자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꾀하고 있는 오늘날, 클래스 올덴버그의 작품이 갖는 순기능적 가치의 의미는 도시 공간 속에 설치된 다양한 작품들을 우리가 삶 속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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