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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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0.11.1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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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우리집으로 마실 나온 이웃 아저씨가 코흘리개의 새학기 교과서를 포장했다.

재료는 회포대 종이. 시멘트나 밀가루를 담는 종이 재질의 포장지다.

여러 겹의 종이로 구성된 포장용지 가운데 부드러운 녀석을 골라 책을 감싸는 재료로 썼다.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받아온 따끈따끈한 교과서의 앞뒤 표지를 회포대 종이로 감싼 뒤 크레용으로 위에는 교과 과목을, 아래에는 내 이름을 적었다.

이 회포대 종이는 어릴 적 시골 화장실의 뒤처리 단골손님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신문지가 그 자리에 함께했다.

이후 새마을운동이 몰고 온 주택개량사업으로 수세식 화장실이 푸세식을 대신하며 화장지라는 신문물이 등장했다.

`AD 105년 후한의 채륜이 나무껍질·마·넝마·헌 어망 등을 원료로 하여 종이를 초조하는 방법을 발명하여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그는 당시 궁중의 용도(用度) 관계 장관과 수공업 분야의 주임직을 겸하고 있었다. 채륜이 발명한 제지술은 나무껍질(꾸지나무의 섬유라고 분석되었다)·마설(헌 어망이라고 분석되었다)·넝마(비단·마의 직물류로 분석되었다) 등을 돌 절구통에 짓이겨 물을 이용하여 종이를 초조하는 원리였는데, 이것은 현대의 초지법(抄紙法)과 같다'(두산백과)

종이는 문화의 전승 수단이며 문화 발달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위인들은 머릿속에 불꽃처럼 떠오른 아이디어를 종이에 옮기면서 역사에 빛을 남겼다.

음악이, 미술이, 시가, 발명품이 종이 위에서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을 후세에 이어 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그의 출생 200년 전에 이탈리아에 전해진 종이에 사실상 전부 다 표현했다.

`종이가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겁니다. 양피지는 훨씬 희귀했기 때문에 쓸 수 없었으니 그것으로는 불가능했겠지요. 작업의 특성상 결과물을 계속 모아야 했으니 타일처럼 수명이 짧은 매체도 소용이 없었을 거고요. 또 작업하면서 메모를 문질러 지워야 했겠죠. 그러니 종이가 없었다면 그런 기록들이 남지 못했을 겁니다'(마틴 켐프)

정부는 지난해부터 전자문서지갑을 기반으로 하는 전자증명서비스를 도입했다. 주민등록등본, 병적증명서 등 서류를 디지털 파일로 수령하고, 필요할 경우 온라인으로 직접 제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팩스나 우편으로 관련 서류를 보내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해 직접 보낼 수 있다.

또한 행정안전부와 8개 대학·한국산업인력공단의 업무협약 체결에 따라 취업 신청 시 필요한 졸업증명서·자격증 등 각종 증명서를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전자증명서로 발급·제출할 수 있게 됐다.

NH농협은행은 전자문서지갑 플랫폼을 통한 전자증명서 제출 및 수취 서비스를 시작한다.

앞으로 은행 고객은 금융거래에 필요한 납세증명서와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등을 앱의 전자문서지갑을 통해 전자증명서 형태로 농협은행에 제출할 수 있다.

위 사례들은 우리가 종이 없는 사회로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여 준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책, 약봉지, 처방전, 달력, 화장지, 신문, 수첩, 각종 고지서, 지폐 등 종이가 수두룩하다.

영국 종이역사학자협회는 몇 해 전 오늘날 약 2만가지에 이르는 종이의 상업적 용도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종이가 사라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일부의 예측은 당장은 들어맞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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