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려인 2세와 관련한 소송구조 이야기
어느 고려인 2세와 관련한 소송구조 이야기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0.11.0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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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 변호사의 以法傳心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어제 있었던 한 행정사건의 재판부에서 필자의 의뢰인(당사자)인 고려인 2세의 배우자가 체류자격이 인정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소에 그 수용을 권고하였으나 원만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못해 2주 후 판결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고려인 3세의 노모(母)가 한국에 남아 가족들의 부양을 받으며 살 수 있게 되면 좋을 텐데 쉽지 않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일제강점의 아픈 역사를 딛고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환경을 개척한 고려인 가족들을 위해 `가족이 결합할 권리'를 상기시킨 법원에 경의를 표합니다.

지난 겨울 막 코로나사태가 시작되는 즈음, 체류자격이 불허되어 출입국관리소로부터 출국명령을 받은 故 고려인 2세의 배우자가 체류자격불허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청주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우리말을 잘하는 고려인 3세 딸의 도움을 받아 나홀로 소송을 낸 것이지만 봄과 여름이 지나도록 소송의 진행이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필자에게 소송구조가 지정된 사건이었습니다. 마침 대한변호사협회의 난민이주외국인특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터라 적극적으로 사건을 수행하였습니다.

일제강점시대에 故 고려인 2세의 부모님이 당시 소련의 사할린으로 강제이주 당하였고, 이후 우즈베키스탄으로 다시 이주되어 고려인 2세(소송당사자의 남편)를 낳았습니다.

고려인 2세는 소련 국적의 배우자를 만나 고려인에게 차별적인 환경들을 극복하면서 고려인 3세인 7남매를 낳아 우크라이나에서 훌륭하게 성장시켰습니다.

지금 7남매 중 5남매가 영주자격을 얻어 체류하며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7남매의 아버지는 1990년대 초까지는 냉전에 따라 한국을 오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후천적 신경마비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없었습니다.

한국행 티켓을 구하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고려인 2세가 한국에 체류했었다면 그가 사망하고도 그 배우자에게 의사에 반하여 출국하라는 조치가 가능했을까요. 고려인 2세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어도 그들은 부부이고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고려인 3세 7남매를 둔 부모임에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휴머니즘에 반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의 대한민국이 이러한 상황을 포용할 수 없는 국가인지 매우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 보면,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한 일은 많았어도 국민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고 헌신하였습니다. 이 시대에는 거대한 권력형 다툼들이 법을 빙자하여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가가 그러한 권력형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행복추구를 보장하는'국가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고려인 3세의 노모가 7남매들과 함께 이 땅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머무를 수 있게 국민의 최종적인 권리구제기관인 법원에 희망을 걸어봅니다.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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