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힐링하기
숲에서 힐링하기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0.11.0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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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연녹색 조끼를 맞춰 입은 숲해설가들 서넛이 넓은 주차장을 덮은 낙엽을 쓸고 있다. 숲해설가는 숲에서 삶을 낚는 사람들, 자연 휴양림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숲의 생태와 역사 등을 설명하여 주는 사람을 말한다. 거들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의자에 걸친 빗자루를 들고 다가서니 손사래다. 문득 전병호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쓸어도 또 낙엽이 떨어지는데/ 아기 스님이 절 마당을 쓴다.// 또 떨어지는데 왜 쓸어요?/ 깨끗한 땅에 떨어지라고요.// `낙엽 쓸기' 전문

낙엽이 깨끗한 땅에 떨어지게 하려고 또 쓴다는 마지막 4행 때문에 방과 후 수업을 할 때 수업을 마치는 시로 학생들과 자주 낭송하던 시이다. 목적이야 어떻든 당분간 깨끗한 땅에 우수수 떨어질 나뭇잎들을 보고 많은 이들이 감탄할 것이다.

낙엽 쓰느라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 드리운 모습들을 보니 가슴이 따뜻해 온다. 그곳에서 숲 해설 실습이 있는 날이라 집에서 준비해간 드립 커피와 과일을 펼쳐놓고 낯선 분위기를 데웠다. 사무실 벽면 한쪽에는 숲해설 관련 책들과 즐비한 도감들이 꽂혀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숲해설가들의 깊은 전문성이 엿보인다. 도란도란 차를 마시면서 몇 권의 책을 훑어보는데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숲해설가가 말하는 숲 이야기』, 『이야기가 있는 용정산림공원』그날 숲 실습을 담당할 주 강사 이름이다. 현장에서 관찰하고 활동한 것들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엮은 몇 권의 책을 통해 그가 지닌 내공을 느낀다.

작성해간 가상 실습계획서를 꺼내 책상에 올려놓으니 세세하게 항목을 짚어가며 꼼꼼하게 체크를 한다. 제목과 목표를 연결하여 작성하는 법과 본 활동에서 세부항목을 설정하는 방법까지 일목요연한 지도방식이다. 오랜 관록의 전문성으로 술술 풀어가는 그 과정을 보면서 이 단계까지 오기 위해 그가 무수히 뿌렸을 엄청난 시간을 가늠한다. 숲 해설은 가르침이 아니라 숲에서 얼마나 웃고 힐링하였는지가 주 활동이라서 교육적인 부분은 삽입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숲은 힐링과 치유의 놀이터여야 하는데 자꾸 버릇처럼 교육적인 부분을 섞으려고 하니 아무래도 제도권 수업을 통해 자동화된 습관이다.

두 분의 숲 해설 전문가와 함께 용정산림공원 일대를 돌며 초본, 관목, 목본, 곤충 관찰을 하는 중에 유독 붉은 열매들이 많이 띈다. 다가가 살펴보는데 관찰 가방에서 루페를 꺼내 확대하여 보여준다. 들깨처럼 작은 이것이 참나무에서 떨어진 구슬벌레혹집이라니, 얼핏 보면 영락없는 씨앗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안다는 인식 체계는 얼마나 허술한 것인가. 카메라와 관찰 통을 장착하고 탐구자의 모습으로 숲을 모니터링하는 모습은 전문가의 포스이다.

나무를 보면 그 기주식물도 알 수 있다는 것과 산초나무가 호랑나비 애벌레의 기주나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곱게 빗질한 듯한 `산그늘'을 보자 장난기가 발동하여 머리처럼 땋아 놓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제 숲은 이전의 단순한 숲이 아니다.

산그늘이 빠져나갈 무렵까지 모니터링하고 내려오는데 허기가 밀려온다. 숲 해설가 한 분이 노란 계수나무 잎 하나를 코끝에 대주니 달고나 향이 가득하다. 한바탕 웃으며 발걸음을 내딛는데 얼룩대장노린재 한 마리가 길을 막는다. 산행 길목이라 수풀 더미로 옮겨주고 내려오면서 비록 숲 해설 교육과정을 통해서지만 늦게나마 숲이 주는 치유를 제대로 향유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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