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어른들 안에 아이가 산대요
글쎄, 어른들 안에 아이가 산대요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0.11.0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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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월요일이면 상담실이 아닌, 책방 카페로 출근해 빵을 굽곤 한다. 빵을 굽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으로 생각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 오랫동안 그 시간에 머물고 싶어진다. 계량을 하고 시간과 온도를 맞춰야 하는 일이 귀찮을 수도 있지만, 후각을 통해 전해지는 고소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마음으로 들어와 훅 심장을 녹인다.

인간의 후각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라는 말이 있다. 시각이나 미각과 같은 다른 감각들은 정보를 시상이라는 중간 과정을 거쳐 대뇌의 전문 영역으로 전달하는 방식인데, 후각은 중간 단계 없이 뇌로 정보를 바로 전달한다. 또한 후각은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에 바로 연결된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가 하면,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의 정원>에서도 주인공이 차와 마들렌을 도구로 잊었던 과거를 기억해 마음을 치유한다. 이러한 현상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하는데 심리와 신체적 감각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아마도, 빵을 굽는 나의 행동은 심리적 치유 작업일 것이다. 후각을 자극하는 순간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유아기적 좌절됐던 행복감을 충족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빵을 굽는 행동의 심리적 동기는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살면서 따뜻한 가정을 그리워하는 내면아이를 돌보는 것, 무의식적 감정을 돌보는 의식인 것이다.

요즘 진행하고 있는 독서치료 프로그램에서 주제도서로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헨리 블랙쇼. 2020)'그림책을 소개했다. 그런데 참여자 중 한 분이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 제목을 잘못 알려주신 것 같아요.' 오타겠지. 어떻게 어른들 안에 아이가 살지 싶었나 보다. 아, 그렇구나. 낯설 수 있겠다 싶었다. 어른으로 사는 내 안에, 성장을 멈춘 아이가 있다니 이상하게 들렸겠다 싶다.

심리학에는 내면아이라는 용어가 있다. 내면아이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무의식에 남아 성장하지 못한 채 있다가 불쑥 언어와 행동으로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면아이는 성숙한 어른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정신분석학자 이무석 선생님은 성난 아이, 질투하는 아이, 의존적인 아이, 열등감에 사로잡힌 아이, 의심 많은 아이, 잘난 체 하는 아이, 조급한 아이, 외로움에 시달리는 아이, 두 얼굴을 가진 아이 등과 같은 내면 아이가 있다고 소개한다. 그들은 격렬하면서도 통제하기 어려운 유아적 감정들로 심리적 감옥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요즘 내면아이와 비슷한 단어로 <어른이>라는 말이 있다. 어른과 어린이를 합성한 말로 유아적 성향을 보일 때 사용하는 말로 알고 있다. 간혹 방송에서 캐릭터 피규어를 모으거나 유아기적 충족되지 못한 일에 몰두하는 모습들이 소개된다.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또는 물질적 부를 자랑하는 방식이라고,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설명하면서 이해받고 수용 받고자 한다. 나는 이러한 행동에는 숨겨진 심리적 동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충족되지 못한 소망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못한 내면아이는 어른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지내다가 언제든 나타나 대인관계에 영향을 주고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고통을 줄 수 있다.

내면아이를 만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아이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언컨대 누구도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면아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동안 나와 여러분에게 부족했던 것은 능력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신뢰와 잘하고 있다고 지지할 수 있는 자기 긍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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