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아름다운 동행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0.11.0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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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어느덧 11월이다. 콩 수확이 남아 있을 뿐 가을걷이도 끝났다. 지금부터가 농한기라고 보면 된다. 새벽 4시 30분이면 들로 나갔었는데 6시 30분이 되어서야 날이 밝는다. 또 오후 8시까지 일을 했는데 요즘은 저녁 5시만 되면 해가 기우니 해 지는 시간 또한 매우 단축되었다. 낮일을 하기로 말하면 배는 차이가 난다. 그러고 보면 계절이란 농민들에게 맞추어졌다는 생각을 갖게도 한다.

농한기이니 농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지만 6시 30분이 되면 농장을 간다. 닭, 오리, 기러기, 칠면조, 다람쥐, 강아지 등 동물들이 농장에 있기 때문인데 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방목하는 녀석들의 우리를 열어주어야 하는데 생명이 있는 동물들을 기르려면 하루라도 돌봄을 거르면 안 된다.

특히 요즘은 갓 부화된 병아리 기러기가 걱정되어서 아침 발걸음이 바쁘다. 유정란 10개를 자동부화기에 넣었으나 34일 만에 1마리만 자연부화 되었고 1마리가 껍질을 깨지 못해 인위적으로 파각시켜 태어났다. 자연 부화된 녀석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나 억지로 껍질을 깨 준 녀석은 1주일이 지나도록 일어서지를 못하고 있다.

기러기는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 겨울을 난다. 우리나라에는 10월에 와서 이듬해 3월에 떠난다. 먹이와 따뜻한 곳을 찾아 40,000km를 나는 기러기. 기러기는 리더를 중심으로 V자 대형을 그리며 머나먼 여행을 한다. 가장 앞에 날아가는 리더의 날갯짓은 기류에 양력을 만들어 주어 뒤에 따라오는 동료 기러기가 혼자 날 때보다 71% 정도 쉽게 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이들은 먼 길을 날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울음소리를 내는데 그 울음소리는 앞에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들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라고 한다. 만약 어느 기러기가 총에 맞았거나 아프거나 지쳐서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면 다른 동료 기러기 두 마리도 함께 대열에서 이탈해 지친 동료가 원기를 회복해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또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동료의 마지막까지 함께 지키다 무리로 다시 돌아온다는 톰 워삼(Tom Worsham)이 쓴 기러기이야기다.

결혼식 폐백 시에 기러기 모형을 놓고 예를 올리는 것은 기러기가 가지는 세 가지 덕목을 사람이 본받자는 뜻이라고 하는데, 기러기는 사랑의 약속을 영원히 지킨다. 보통 수명이 150~200년인데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는 것. 그리고 상하의 질서를 지키고 날아갈 때도 행렬을 맞추며 앞서가는 녀석이 울면 뒤따라가는 녀석도 화답하여 예를 지킨다 하고, 기러기는 왔다는 흔적을 분명히 남기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한다고 규정짓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적어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각자가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삶이라도 그것이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는 삶.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행복에 가치를 둘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인류는 훨씬 행복하게 살게 되지 않을까. 아픈 사람에게는 치유의 존재가 되어야 하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지혜를 나누어 주며, 인정이 메마른 곳에는 사랑의 감동을 나눌 수 있다면….

수만 리 머나먼 길을, 옆에서 함께 날갯짓을 하는 동료를 의지하며 날아가는 의로운 기러기. 한번 연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함께하며 짝을 잃으면 혼자 생을 마친다는 의미로 옛 어른들은 혼례식에서 기러기를 주고받았다고 하는 이 기러기를 꼭 한번 길러보고 싶었다. 전통시장에서 5마리를 사 기르다가 고양이에게 3마리를 잃었는데 나머지 두 마리가 수컷이라서 암컷을 얻고자 유정란 10개를 사다 부화기에 넣었었다.

이 아침 농장을 향하는 발걸음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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