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털리고 있다
가을이 털리고 있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11.0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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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그동안 나무들은 착실히도 떠날 날을 기다리며 준비를 했나 보다. 산과 들의 나무들도 온통 단풍으로 색을 바꾸고 차례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오늘은 가을비가 종일 내리고 있다. 비와 함께 불어대는 바람은 머뭇거림도 없이 길가 은행나무 잎들을 털어낸다. 빗물에 멀리 날아가지도 못하고 오소소 나무 밑에서 서로를 보듬고 안으며 노란 잎들은 그렇게 모여 앉아 떨고 있다. 털리고 있는 것은 은행나무 잎만이 아니다. 산에 사는 나무들 또한 바람에게 털리는 중이다.

11월은 그렇게 모두가 떠나고 보내는 달, 산속의 나무들과 들녘의 곡식들은 겨울을 만날 새라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한다. 아무 미련도 없이 잎들의 손을 놓아버리는 나무는 얼마나 강심장이란 말인가. 그에 반해 우리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서럽고 두려워 애면글면하며 살아간다. 자연은 그렇게 자신들의 색으로 물들어 장엄하게 겨울을 맞는다. 나무가 단풍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듯 우리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삶을 살 수는 없을까.

이맘때면 생각나는 과일이 있다. 지금쯤 제주도에는 귤들이 노란 단풍 빛으로 물들어 아름다울 때다. 그런데 엊그제 경제 뉴스에서 진도에서 노지 귤이 재배되어 출하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뉴스의 제목에는 “지구 온난화 영향”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의 바다와 땅이 따뜻해져 점점 그 기운이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제는 귤이 제주도만의 특산품으로 남지는 못하게 되었다. 어디 그뿐일까. 남부지역보다 쌀쌀한 이곳 중부지역에서 재배되는 사과도 그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지구를 병들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이 지구의 온난화를 가속화 시키고 있는 격이다. 요즘은 공기도 좋아 종종 마당의 나무탁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신다.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가지 않으니 하늘길도 깨끗해진 것일까. 하늘이 정말 맑고 푸르기만 하다. 코로나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덜하니 반대로 자연이 즐기는 듯하다.

그동안 가을이면 우리를 즐겁게 해 주던 단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 유난히 그 빛이 곱게 보이는 것은 가까운 곳의 아름다움을 멀리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일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여유를 즐기며 건강을 챙기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우선시 되는 시대이다. 주말이면 고속도로가 막히고, 연휴에는 공항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은 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이 막히자 이제는 국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올해 국내 여행지의 단풍 얘기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이고 많은 사람이 보고 오니 단풍 빛이 더 고와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을이 함께 달리고 있다. 노랗고 붉은빛으로 길을 밝히며 달린다. 나의 가을도 이렇게 아름답게 물들 수 있을까. 그득한 욕심과 미움을 버리면 마음은 한없이 가벼워질 것이고 그렇게 비워낸 마음속에는 아름다움이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아름답게 물들어 누군가의 곁도 밝혀 줄 수 있다면, 나의 가을도 온전히 털릴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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