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다시는 안 올 것 같은가
그때가 다시는 안 올 것 같은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11.0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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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2015년 4월 29일 재보궐 선거가 있었다. 의석 4개가 걸린 미니 선거였지만,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겐 절박한 한판이었다. 그해 2월 출범한 문재인 대표 체제가 첫 평가를 받을 시험대였다. 문 대표는 전해 7월 재보선 참패에 책임을 지고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퇴진한 후 비대위가 운영해온 당을 접수했다. 위기 상황을 물려받은 그로서는 당을 추스르고 열세 국면을 전환시킬 변곡점이 절실했다. 4·29 재보선은 대선 주자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호기이기도 했다. 여건은 유리했다. 4개 선거구 모두 야당 우세 내지는 접전이 예상됐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휩싸여 똥줄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한 곳도 건지지 못했다. 세 곳은 새누리당에 내주고, 텃밭인 광주에서조차 당을 나가 무소속 출마한 천정배에게 깨졌다.

참패를 거듭한 정당에 여론은 동정조차 베풀지 않았다. 선거 직후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새누리당은 42%, 새정치연합은 22%로 나왔다. 선거 전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구성원들은 당이 더 이상 추락할 곳 없는 나락에 처했음을 절감했고, 뼈를 들어내는 대수술 외에는 처방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집도의로 초빙됐다. 김상곤의 당 혁신위원회는 두 달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혁신정책을 마련해 국민에게 보고했다. 필사적이었다. 우리 정치를 일신 우일신할 개혁 종합세트가 이때 등장했다.

눈에 띄는 게 총선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이었다. 양당 독식주의와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소수정당의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기 위해서는 비례의석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였다. 호남에서 5.4%를 득표하고도 한 석도 얻지 못한 새누리당의 사례를 논거로 든 것은 신선했다. 이후 연동형 비례제는 민주당의 당론이자 공약으로 자리 잡았다.

새누리당을 머쓱하게 만든 또 다른 혁신안은 당헌의 무공천 조항을 의무 규정으로 못박은 것이다. 혁신위는 당헌에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과실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할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도덕성에 한해서는 새누리당이 우리를 따를 수 없다는 자신감을 국민에게 새삼 환기시킨 한 수 였다. 이 규정을 적용할 공직자들이 줄줄이 자기 당에서 나온 점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민주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이 주도해 국회에서 처리한 준연동형 비례제를 스스로 폐기했다.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한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결과가 뻔한 당원투표를 돌파구로 삼았다. 민주당은 당헌에 따라 무공천 원칙을 적용해야 할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도 후보를 내기로 했다. 이낙연 대표는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공천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선된 후보자가 임기를 마칠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무한 책임론을 당헌에 못박았던 정당의 대표가 사정이 달라지자 다른 책임론을 말한다.

민주당(새정치연합)이 2015년 절박한 심정으로 공표한 혁신안들은 식구들 결속이나 꾀하려는 집안 단도리 용이 아니었다. 차갑게 등을 돌린 당 밖의 유권자들을 향한 처절한 읍소였다. 그 약속을 파기할 때는 당원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 지지 정당이 국민을 기만한 행태를 거듭 승인해야 하는 당원들의 심정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당원들을 구차하게 만든 과오도 가벼이 볼 수 없다.

민주당은 벼랑 끝으로 몰리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런 때가 다시 왔을 때 무슨 염치로, 무슨 약속으로 차가워진 민심을 덥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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