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피어있는가
그대 피어있는가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0.11.0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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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가을인가, 가을이다. 전염병으로 놀란 가슴이 저 모습일까 싶을 만큼 붉다. 중앙공원 압각수(鴨脚樹)도 얼마 전부터 느긋하게 가을 색을 내고 있다. 올여름 가장 큰 경험을 말하라고 한다면 매미가 탈피하는 모습을 본 사건(?)이다. 어느 여름날, 땅에 뚫린 구멍에 호기심이 생겨 둘러보니 나뭇가지에 매미가 탈피하고 버린 껍질이 있었다. 사무실로 가져와 며칠을 두고 본 기억이 있다. 만질 때마다 소름이 돋았지만 정교한 모양과 주름은 신비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매미가 탈피하는 모습까지 보게 된 것이다. 뭐든 실제로 봐야 한다. 이론적으로야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맛은 영상이나 그림으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모를 것이다. 나처럼 매미에 푹 져 있는 작가를 발견했다. 장현정 작가다. 2015년 `맴'이라는 작품으로 매미를 얘기했는데 이번 신작도 `피어나다'라는 매미에 관한 얘기다. 표지를 보고 `심쿵'하고 말았다. 여백이 말을 거는 듯이 가느다란 보라색 꽃 위에서 작은 매미가 까만 눈을 반짝이며 이제 막 탈피를 하고 있다. 젖은 날개를 한 채로.

제목이 특이하다. 매미이야기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지만 그림책을 다 보고 나면 `피어나다'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피어나다, 피어나다, 피어나다 … 문득 사전적인 정의가 알고 싶다. 찾아보니 생각보다 여러 곳에 쓰인다. 가령 `연기가 피어나다' `웃음이 입가에 피어나다' `살림이 피어나다' `연탄불이 피어나다'등 거의 죽게 된 사람이 깨어날 때도 쓴단다. 매미를 생각하며 `피어나다'를 입안에서 옹알이처럼 웅얼거려본다. `기사회생'했을 때, 형편이나 상황이 점점 나아질 때도 쓰는 `피어나다'는 매미의 삶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7년 동안 땅속에서 없는 듯이 있다가 `때'가 되면 매미로 변신하여 삶에 대한 열정으로 운다. 땅속에서 얼마를 있었든, 며칠을 살든 그딴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의 생이 피어나는 때를 기다려 그날이 왔을 때, 마음껏 피어날 수 있는가. 본질은 그것이다. 긴 시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남과 비교하며 더 갖으려고 안달하려는 게 아니고 주어진 자신의 운명을 만끽하고 허락된 날만큼 살아내는 매미가 여름 내내 나의 스승이었다.

나는 저렇게 뜨겁게 울어 본 적 있는지, 난 언제나 겁에 질려 뭐든 힘겹게 넘어섰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다 즐거운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매순간 피어났을 수도 있고, 매미의 지난한 7년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날도 많았다. 어쩌면 나는 아직 `때'를 기다리며 땅속에서 웅크린 채 피어나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어느 인터뷰에서 `총균쇠'로 유명한 제래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자신의 `리드'시절은 70세에서 80세였다고 고백한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는 13개국어를 하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배운 이탈리아어는 62세며 지금도 일 년에 몇 달은 이탈리아에서 이태리어로 강의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83세다.

그림책 뒤표지는 보라색 꽃잎이 떨어지고 더러는 시들어 있다. 제 날을 다 살고 간 꽃은 씨앗을 떨어뜨렸을 것이고 그 씨앗은 다시 새로운 꽃으로 피어나듯이 뜨거운 여름을 온몸으로 살아낸 매미는 칠일을 살고 사라질 테지만 땅속에 남긴 알은 다시 깨어나 우리의 여름을 환히 피울 것이다. 나도 내 인생의 그날을 위해 기꺼이 땅속에서의 기다림을 즐기려고 한다. 우리의 생은 외로울 수는 있어도 하찮은 인생은 없다. 당신의 기다림, 나의 기다림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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