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만 쉬었는데 한 해 한 수입?
숨만 쉬었는데 한 해 한 수입?
  • 오영근 기자
  • 승인 2020.10.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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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오영근 선임기자
오영근 선임기자

 

“혹시 무슨 일 하시는지 물어봐도 돼요?”“간단히 말하면…그냥 노는 거에요.”

이창동 감독의 2018년 개봉작 영화`버닝'에서 주인공 종수(유아인)와 벤(스티븐 연)이 나눈 대화다.

소설가를 꿈꾸지만 글 쓸 시간조차 없이 택배 알바를 하며 아등바등 살고 있는 종수. 엄마는 어릴 적 가출했고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아버지는 공무집행죄로 구속돼 있다. 의지할 곳 없는 그는 미래까지 불투명한 흙수저다.

벤은 그 반대다. 호화로운 집에 살며 외제차 포르셰를 끌고 다닌다. 하고 싶은 건 모두 다하는 말 그대로 능력자다. 그냥 노는 게 일이라는 그의 말처럼 특별한 직업도 없지만 돈이 엄청나게 많은 금수저다.

여기에 종수의 애인 해미(전종서)가 등장한다. 그녀 역시 흑수저다. 종수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늘 금수저 벤과 붙어다니며 수수께끼 같은 행동을 한다.

제목 버닝처럼 엔딩은 흙수저 종수가 금수저 벤을 살해 후 차와 함께 불태우는 것으로 끝난다.

1시간40분 내내 앰비규어스한 기법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의 골간은 젊은 세대의 불평등에 맞춰져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간 현실과 이상의 간극, 좌절과 질투, 적대감이 화면 곳곳에 깔려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구분 짓는 첫 번째 요인은 부의 대물림이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 증여다.

2018년의 경우 전국 주택 증여건수는 10만여 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중 미성년 증여액은 2015년 5,545억원에서 2017년 1조270억원으로 배 이상 늘어났다.

최근엔 할아버지에서 자녀를 건너뛰어 손주세대로 물려주는 `세대생략 증여'도 증가하는 추세다.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서란다. 2015년 3,000여건(1,946억원)에서 2018년 7,000여건(3,979억원)으로 늘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의원(서울 노원갑)이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다.

부의 대물림은 금융 주식시장에서도 뚜렷하다. 역시 고 의원이 밝힌 자료다.

미성년의 신규 주식계좌 개설건수가 올 8월까지만 29만여 건으로 지난해(9만여건)보다 3배나 증가했다.

예수금 증가액도 2,750억원으로 작년 한 해 370억원을 7배 이상 초과하고 있다.

코로나로 주가가 폭락한 지난 3월부터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니 코로나가 부의 대물림을 촉발시킨 셈이다.

이자와 배당을 합한 금융소득이 2천만원을 넘는 미성년자도 2018년 기준 1,771명에 이른다.

한 명당 평균 1억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것으로 돼 있다. 이중 15%(272명/215억원)는 미취학 아동이다.

심지어 갓 태어난 1살 미만 아동도 20명이나 포함돼 있다. 그저 숨만 쉬고 있는데도 한 해 1억4천만원의 소득이 생긴다. 말 그대로 태어날 때부터 주식 부자요 금수저다.

영화 버닝의 금수저 벤도 아마 이렇게 부를 대물림 받았을것 같다.

금수저에게 애인을 빼앗겼다고 여긴 흙수저 종수, 불평등에 적개심과 복수심이 차올랐으리라.

영화처럼 부의 대물림은 불평등을 수반한다. `21세기 자본론'의 저자 피게티도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이유를 `부의 세습'에서 찾지 않았던가. 30년간 미국 명문가의 재산관리를 해왔다는 변호사, 제임스 E.휴즈 주니어는 그의 저서 `부의 대물림'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재산보존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적, 지적재산보다는 물적 재산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수수께끼 같은 영화 `버닝'을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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