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2)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2)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0.10.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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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라며 직설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림책이 있다. `100만 번 산 고양이'로 잘 알려진 사노 요코의 그림책 `태어난 아이'의 첫 문장이다. 그럼 독자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고. 작가와 독자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대목이다.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태어난다는 것을 여러 경우에 빗대어 쓴다. 가장 기본적인 의미로는 생물학적으로 생을 시작하는 것일 게다. 탯줄로 이어진 엄마에게서 분리 말이다. 더불어 우리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흔히 사용한다. 삶의 가치 기준에 변화를 주는 시점을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고들 한다. 가치 기준에 변화를 주면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지고 그러면 행동 또한 달라지니 다시 태어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집에는 30kg의 체중 감량 성공으로 다시 태어나 폼생폼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이가 있다. 다이어트의 시작은 의사의 권유로 건강을 위해 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삶을 대하는 태도는 무한히 진화하고 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말이다. 그러니 가히 다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거다.

그림책 `태어난 아이'에서 작가 사노 요코는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통해서 삶의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현실에 관심이 없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다. 작열하는 태양이 내리비춰도, 무서운 사자가 나타나도, 강아지가 핥아도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 아이에게 동행이 생긴다. 아이의 존재를 알아봐 주는 강아지와 함께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사람 속으로 스며들어가지만 세상사는 일에 흔들리지는 않는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공원에 오도카니 앉아서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을 바라본다.

자신에 대한 사랑도 타인에 대한 관심도 없던 태어나지 않은 아이, 일상이 무의미하기만 했던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100만 번 산 고양이'에서는 이성에 대한 사랑이 얼룩고양이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주었다면 `태어난 아이'에서 작가는 `엄마'에 초점을 두었다.

“엄마! 아파!”하며 울먹이는 여자아이, “괜찮아, 괜찮아”하며 달려와 달래주는 엄마.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다며 스스로를 위안 해 본다. 그런데 여자아이에게 약을 발라주고 반창고를 딱 붙여 주는 모습을 보는 순간,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마침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엄마의 손길이 닿는 반창고를 붙이는 일이다. 삶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엄마의 사랑이라는 바람이 부는 시점이다.

“엄마”를 외치며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마침내 태어났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이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일어 팬티를 입기 시작하고, 팔과 다리가 아파 울기도 한다.

태어난 아이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다. 그러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질까?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라는 걸 알아가며, 조절해 가며 능동적인 삶을 살아갈까?

태어나고 싶지 않았기에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태어나지 않는 아이와 백만 번을 살았어도 주체적인 삶이 아니었기에 백만 번의 생을 별반 다르지 않게 보낸 고양이의 이야기는 한 곳으로 모아진다.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 누군가와 더불어 사는 시간들! 그것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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