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지상주의
학벌 지상주의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0.10.2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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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장갑순 서산시의원
김금란 부국장

 

너도나도 어려운 시절엔 자식 하나 잘 키워 학사모를 씌우는 게 꿈이었다.

문전옥답을 팔아도 자식이 대학 졸업장만 받으면 집안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시절 마을 입구에는 뉘 집 자식 대학 합격했다는 현수막이 걸렸고, 동네잔치도 벌어졌다.

먹고 살만해진 지금은 어떤가.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교육의 시작과 끝은 명문대 입학 곧 학벌로 평가받는다.

시대가 변했으니 아이의 재능과 소질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그 소질 역시 명문대 합격으로 귀결된다.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명문대 졸업장이 있어야 사회에서 사람대접 받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대학 간판으로 한 사람의 미래를 저울질하고, 특정 대학 졸업장이 마치 성공이 보장된 만능키처럼 여긴다.

이런 이유로 학부모들은 자녀를 특정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노후도 포기한다. 못 먹을지언정 학원은 보내야 하고 과외도 시켜야 부모 노릇을 한 것처럼 안도한다.

그래서인지 서울대에 몇 명을 진학시켰는지, 의대에 몇 명 보냈는지,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얼마나 입학했는지를 두고 학교 교육을 판단한다.

국회 이광재 의원이 교육의 지역 불균형을 짚어보겠다며 서울대로부터 제출받은 시도별 서울대 입학생 출신 비율을 두고 충북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충북은 고3 학생 1000명당 서울대 입학생 수(2020학년도)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3.1명으로 울산광역시와 함께 최하위였다.

충북도교육청은 최근 충북 교육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입증하겠다며 도내 학생들의 최근 5년간 대입합격자 현황과 청주 평준화고교의 대학 진학 결과를 공개했다. 이런 논쟁을 두고 어떤 교원단체는 교육감 책임론을, 또 다른 단체는 대학 서열화를 비판하고 나섰다. 학부모단체들도 대입실적이 평준화되지 못한 부정적 결과'의 원인을 찾을 것을 촉구했다.

명문대를 입학시켜야 유능한 교사로 평가하는 것도, 자식을 명문대로 보내야 능력 있는 부모라고 치켜세우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명문대 입학을 지상 목표로 삼는다.

이유가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시장에서도 학교 간판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최근 기업 316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3.5%가 지원자 학벌이 채용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이들 기업(169개)은 그 이유로 학벌 따라 역량 차이가 있어서(58.9%·복수응답)를 1위로 꼽았다. 이어 객관적인 조건이어서(41.4%), 노력을 인정하기 위해서(40.8%), 채용 시 만족도 높아서(13.6%), 활용 가능한 인맥 많아서(9.5%) 순이었다.

그렇다면 좋은 학벌은 채용 평가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학벌의 영향 1위로는 지원자를 더 꼼꼼하고 유리하게 평가한다(60.4%)고 밝혔다. 이어 우선순위로 선정(35.5%), 가산점 부여(24.9%), 결격사유 발생 시 구제(2.4%) 등의 영향도 있었다.

인기가요 `아모르파티'의 곡을 쓴 작사가 이건우씨는 1200곡을 작업했고, 250편의 히트곡을 갖고 있어 작신(작사의 신)으로 불린다. 그는 학창 시절 시 쓰기를 좋아했고 백일장에서의 수상 경력도 많아 작사가를 꿈꿨다. 고교 졸업 후 20살에 쓴 생애 첫 곡이 전영록이 부른 `종이학'이었다. 그런 그는 20년 전 나이 40이 넘어 재수를 통해 대학에 진학했다. 작사가의 꿈을 이룬 그였지만 국문과를 나왔느냐, 문예창작과 출신이냐, 몇 학번이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장이 곧 꿈이자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한 학벌은 우리의 삶을 옥죄는 족쇄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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