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가는 딸에게
시집가는 딸에게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0.10.27 18: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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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딸아, 결혼 축하한다. 어느새 커서 독립된 가정을 꾸리겠다니 대견스러우면서도 여러 가지 감정이 앞서는구나. 엄마는 요즘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어. 결혼 준비를 네가 알아서 하고 있으니까 엄마도 뭐 하나는 해주고 싶었거든. 좋은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민화로 흰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커플티를 만들어 주기로 했단다.

일월오봉도가 네가 앞으로 이룰 가정을 잘 다스리며 살라는 뜻에서 엄마가 고른 그림이란다. 조선시대에는 통치자가 다스리는 삼라만상을 뜻하는 이 그림을 항상 왕이 있는 곳마다 함께 놓았대. 무덤에 까지도. 또 이 그림은 왕, 즉 사람(人)이 합해져야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거라더라. 단순한 그림 이상인 거지.

하늘에는 달과 해가 있고, 다섯 개의 산봉우리 아래 좌우대칭으로 소나무와 폭포 그 사이에 물결이 넘실대는 그림을 반씩 나눠서 등판에 그렸어. 그렇게 하니까 달과 해가 나뉘고, 각각 두 봉우리 반의 산을 그리게 되더라. 달이 있는 쪽이 네 것이야. 제목도 붙였지. `월이봉반소정', `일이봉반두영'. 소정이와 두영이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등 그림이 합쳐지고 너희(人)까지 더해져 너희만의 일월오봉도가 완성되는 거지. 어때, 근사하지?

그런데 지금까지 그리다가 몇 번을 빨았는지 몰라. 직물용 펜이라고 산 게 번지는 바람에 통째로 한번 빨았지. 마르기도 전에 옆 색을 칠하다가 색이 섞여서 빨고, 손에 묻은 물감이 엄한데 묻어서 또 빨고. 계속 빨아 말리고 다림질해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어. 다행인 것이 천에 쓰는 물감인데도 바로 빨면 지워지더라. 그리고 앞판이 너무 밋밋하길래 왼 가슴께에 원앙 한 마리씩 그려줬어. 맘에 들었으면 좋겠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분명 실수하는 때가 있을 거야. 그럴 때는 그림을 빨듯 얼른 바로 잡으면 되는 거야. 엄마도 아무 것도 몰라 결혼했어도 지금까지 잘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감당키 힘든 상황이 생긴다면 하나만 꼭 기억해라. 돌아보면 언제든 안아줄 엄마 품이 있다는 걸.

아까 솔잎 칠 때 문득 너 고3 때가 떠오르더라. 주말에 기숙사에서 돌아온 네가 머리를 묶어도 자꾸 삐져나와서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며 파마를 하겠다고 했었지. 공부하겠다는데, 당연히 스트레이트 파마라 생각하고 허락했었다. 나중에 꼬불꼬불해져 나타난 너를 보고 불같이 화냈던 게 생각났어.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 주는 내내 한마디도 안 했었지. 그날 대충 주먹밥에 김 한 장 붙여서 싸준 도시락을 보고 친구들이 “니네 엄마 정말 화 많이 나셨나 보다.” 그랬다고 했던가?

혹시 엄마가 그냥 지나쳐서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서운함이 있다면 이참에 다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엄마는 지금의 너보다도 어린 나이에 너를 낳았던 거잖니. 뭘 몰라서, 널 위한다는 마음에 그랬을 거야.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워. 네가 엄마한테로 와서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모든 감동과 힘들었던 일조차도 추억하며 오래도록 행복해할게.

천 번의 전생을 함께 지나야 만나게 되는 인연이 평생의 반려자래. 그래서 천생연분이라고들 하지. 귀한 인연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우리 딸, 잘 살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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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비츠 2020-10-31 11:04:41
글이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