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중 한 명은 물러나야 한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물러나야 한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10.25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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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그제 국감장에서 한 말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틀린 말이다. 직제상으로도 그렇고 검찰청법을 살펴봐도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하급자가 맞다. 검찰청법 8조는 `법무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검사를 지휘·감독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윤 총장은 이 발언을 하며 `법리적으로(봤을때)'라는 단서를 달았다. 관련 법 조문들을 법이론적으로 해석할 때 달리 볼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우선 검찰총장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언제라도 갈아치울 수 있는 법무장관과 달리 임기 2년이 보장돼 있다. 법 집행기관을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임기제 검찰총장 21명 중 임기를 채운 총장이 8명에 불과하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 친인척이나 조직내부 비리, 정권과의 정책적 이견·갈등 등의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 인사권자로부터 압력을 받아 물러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송광수 총장은 청와대와 법무부가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추진하자 “중수부를 없애려거든 내 목부터 치라”며 정면으로 저항했다. 그는 정권과 내내 갈등했지만 임기 2년을 채우고 물러났다. 중수부는 다음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 가서야 폐지됐다.

검찰청법은 법무장관의 검찰 지휘권을 인정하면서도 개별 사건에 일일이 개입하는 것은 막고 있다.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지휘하도록 하고 있다. 역시 권력의 부당한 검찰권 개입을 막기 위한 조문이다. 윤 총장이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고 한 것은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법무장관의 지휘를 제한한 검찰청법의 또 다른 조항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그가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해야 하는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지휘에 맹종하는 하수인이 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면 `부하가 아니다'는 발언을 전혀 그르다고 할 수도 없다.

법무장관의 검찰총장 지휘권은 검찰청법에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행사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1949년 제정된 검찰청법의 이 조항은 반세기를 훌쩍 넘긴 2005년이 돼서야 처음 행사됐다. 당시 검찰이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 대학교수의 구속을 강행하려 하자 천정배 장관이 지휘권을 동원해 제동을 걸었다.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이에 대한 항의로 사퇴했다. 검찰이 알아서 기기도 했겠지만, 군사정권에서도 장관 지휘권이 행사된 전례가 없다. 서슬퍼런 5공 때도 검찰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과 장인을 구속할 때 법무장관은 지켜만 봤다. 그만큼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견고했기 때문이다.

다시 법전으로 돌아간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15년 만인 올해 들어서 연속 소환되고 있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라임 로비의혹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과 남부지검이 대검의 지휘를 받지 말고 독립적으로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윤석열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한 것이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야권 정치인의 비위사실과 검사들에 대한 향응·금품 로비 제보를 받고도 수사를 누락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추 장관은 라임 사건의 주범으로 구속된 인물이 옥중에서 발표한 입장문을 근거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는 검사들을 룸살롱에서 접대하고 야권 인사가 금품 로비를 받은 정황을 검찰에 진술했으나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여당 정치인은 사건과 무관하다고 수차례 얘기해도 수사를 강행하더라고도 했다. 윤 총장이 이 같은 진술을 보고받고도 손을 놓았으니 수사 지휘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 추 장관의 판단이다.

윤 총장은 `중상모략'이라고 반박했다. “중범죄자의 얘기를 갖고 총장 지휘권을 박탈하고 검찰을 공박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도 했다. 엊그제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은 추 장관이 지휘권을 발동하며 제기한 사유들이 사실과 다르다며 사퇴했다. 그는 검사 접대 의혹은 옥중 입장문을 통해 처음 알았고, 야권 인사에 대한 수사도 지난 5월 윤 총장에게 보고한 후 진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어느 한 쪽이 진실을 덮고 있다는 얘기다. 법무부와 검찰은 엄정한 수사와 감찰을 통해 사실을 밝히고, 두 사람은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야권인사 혐의와 검사 비위를 보고받고도 뭉갠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윤 총장은 자리에서 내려와 수사를 받아야 한다. 반대로 윤 총장의 반박이 사실로 드러나면 추 장관은 사기꾼의 거짓말에 놀아나 수사지휘권을 남용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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