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과 사위의 교분과 정이 스며 있는 정자, 영동 빙옥정(永同 氷玉亭)
장인과 사위의 교분과 정이 스며 있는 정자, 영동 빙옥정(永同 氷玉亭)
  • 김형래 강동대교수
  • 승인 2020.10.2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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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영동 빙옥정 전경.
영동 빙옥정 전경.

 

충북의 최남단인 영동지역에는 이름난 누정들이 많다. 바람을 타고 노니는 신선이 된다는 뜻을 담은 가학루(駕鶴樓), 문중 화합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화수루(花樹樓), 형제의 우애가 깃들어 있는 별당 사로당(四老堂) 등이 있다. 이외에도 금강(錦江)변 일대의 여의정(如意亭), 채하정(彩霞亭), 강선대(降仙臺), 함벽정(涵碧亭), 봉양정(鳳陽亭), 봉황대(鳳凰臺), 한천정(寒泉亭)과 같은 고졸하고 풍류 넘치는 정자들이 즐비하다.

정몽주의 문인으로 조선 건국에 참여했던 조선 초기의 문신 윤상(尹祥, 1373~1455)이 금유(琴柔)에게 보낸 글에서 “영동은 산수(山水)가 맑고 기이해서 시(詩) 짓는데 도움을 받을 만한 것이 진실로 많다.” 라고 했다. 이처럼 영동지역은 백두대간의 능선이 낮아지며 만들어낸 골짜기 사이로 크고 작은 하천과 기암(奇巖)이 만들어낸 경관이 즐비하여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을 불러들였다.

빙옥정(氷玉亭)은 양강면 남전리 마을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남전리(田里)는 700여 년 전 구례장씨 선조들이 가시덤불을 헤치고 정착하였고 그 후 여러 성씨들이 모여 집촌마을을 형성하였다. 특히 고려말엽 공민왕 때 전객시령으로 있던 영산김씨(永山金氏) 시조인 김영이(金令貽)가 국운이 극도로 쇠퇴하여 망국지운을 막을 수 없게 되자 사위 순천박씨 박원용(朴元龍), 구례장씨 장비(張丕), 밀양박씨 박시용(朴時庸)과 함께 이곳으로 낙향하여 학문을 익히며 인재양성에 전력하였다. 이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김영이(金令貽)의 공을 치하하면서 덕성(德性)이 기산(箕山)에 모였다고 칭송하니 이때부터 마을이름도 기산(箕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는 중국 요(堯)임금 시대의 선비였던 허유(許由)가 벼슬하지 않고 기산(箕山)에 숨어서 절조(節操)를 지킨 것에 김영이(金令貽)를 비유하여 유래한 것이다.

`빙옥정(氷玉亭)'이란 정자의 이름도 `얼음과 같이 맑고 구슬과 같이 윤이 난다'는 뜻으로 『진서(晋書)』 「위개전(衛?傳)」에 나오는 장인 악광(廣)과 사위 위개(衛?) 사이의 뛰어난 교분과 두터운 정이 있음을 뜻하는 `빙청(氷淸) 옥윤(玉潤)'이라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빙옥정은 조선 영조 40년(1764)에 세워진 것으로 전하나, 현재의 정자는 1989년 새 재목(材木)과 새 기와(蓋瓦)를 사용하여 중건하였다. 정자 내부의 4면에는 빙옥정 현판을 비롯하여 빙옥정 중건기, 빙옥정 유래기 등 많은 현판이 걸려 있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빙옥정 전면의 기암절벽 아래로는 영동천이 흐르고 주위에는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져 있어 후손 김동표(金東杓)가 기록한 기산팔경(箕山八景)중 한곳이며, 이 지역 주민들의 학창시절 소풍 장소 등 좋은 휴식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빙옥정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적어도 세 곳에서 정자를 바라봐야 한다. 어느 정자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빙옥정은 그렇다. 멀리서 오래된 소나무와 함께 어우러진 빙옥정을 보고, 다음에 가까이 다가가 앞에 펼쳐진 기암괴석과 그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와 함께 우뚝 서 있는 빙옥정을 보고, 빙옥정의 마루에 걸터앉아 정자 밖의 풍경을 봐야 한다. 어디서 보든 절경이다.

김형래 강동대교수
김형래 강동대교수

 

이러한 입지적, 경관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빙옥정은 풍류관망보다는 선조의 뜻을 받들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경내에 있는 김영이와 장비 단소(충청북도 기념물 제89호)에서는 후손들이 해마다 제사를 올리고 있다. 지금도 4성의 후손들은 우의를 두텁게 하기 위하여 `빙옥회(氷玉會)'를 조직하고 매년 모여서 선조들을 기리며 형제지간 못지않게 지내고 있다. 빙옥정은 물질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충효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소중한 교육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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