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에서
봉정사에서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20.10.2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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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안동 봉정사에 갔다. 2018년에 `산사(Sansa),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7개의 사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중 하나인 봉정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 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손등에 체온계를 대고 발열 체크를 하였다. 산사로 향하는 소나무 숲길을 걸으니 코는 마스크로 가려 있지만 상쾌한 솔향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담한 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극락전은 국보 15호이다.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고려 공민왕 12년(1363년)에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처음 지어진 것은 그보다 훨씬 앞서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고,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이나 예산 수덕사의 대웅전보다 오래전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을 직접 보니 아쉬움이 컸다. 전면 3칸, 측면 4칸의 건물 외벽이 밝은 황토색으로 말끔하여 고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부자연스러웠다. 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다. 건물을 한 바퀴 돌아보며 아쉬움이 더욱 커졌다. 긴 나무 살을 대어 만든 창조차도 너무나 새것 같았다. 정면에서 보이는 네 개의 배흘림기둥이 이 건물의 가치를 간신히 받쳐주고 있었다.

오히려 조선 초기에 지어졌다는 대웅전은 진한 세월의 색을 입고 있어 위엄이 풍겼다. 기와지붕은 푸르른 산을 배경으로 양 날개를 활짝 펴고 있어 청명한 가을하늘로 고고히 날아오를 듯한 기세다. 바래져서 더 아름다웠다.

봉정사의 오른쪽으로 난 긴 돌계단을 올라 영산암으로 갔다. 아름다운 한국 10대 정원으로 알려진 곳이며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나랏말싸미>의 촬영 장소였다. 입구를 들어서자 경사진 지형에 불규칙한 돌계단과 좁은 평지가 어우러져 있는 정원이 있고, 건물들이 ㅁ자로 정원을 바라보고 놓여 있었다. 정원은 정원사가 일부러 계획하고 꾸민 것 같지는 않고 어느 한 쪽에는 나무를 심고 다른 쪽에는 꽃을 심으며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쳤을 것 같다. 마당 한쪽에 커다란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바위를 쪼개며 동시에 바위를 보듬어 안고 자라고 있었다.

마침 툇마루에 앉았던 두 사람이 일어서니 나도 그 자리에 앉아보았다. 앉아서 보면 서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시선을 갖게 된다. 머물러 더 유심히 보게 된다. 건물들을 올려다보게 된다. 시간을 거슬러 오래전 어느 날을 상상해 본다. 건물이 완성된 날 함께 올려다보며 뿌듯해하고 감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날 단청은 참 곱고 화려했을 것이다. 지금은 바래서 흔적만 남아있다. 오랜 시간에 단련되어 거뭇하게 바짝 말라진 나뭇결 사이사이로 역사의 온기가 살아나온다. 꽃향기에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서 있는 노스님, 그 옆으로 가볍게 정원을 가로지르는 동자승이 보이는 듯하다.

수백 년 동안 바람에 스치고 스쳐 닳고 닳아지는 건축물들, 얼핏 보았을 때는 관리되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잠시 앉아 차근히 보며 생각하니 덧대거나 바꾸거나 덧칠하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한 누군가의 결정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덧대고 바꾸고 덧칠하여 말끔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더 쉬운 결정일 수도 있었다.

바위 위에서 발아한 솔 싹, 비뚤게 자란 나무의 가지, 기와 위에 켜켜이 쌓이는 이끼들, 건물을 지탱하며 균형 잡느라 틈이 갈라진 오래된 기둥. 이런 것들이 영산암 만의 풍경이 되고 우리 민족 문화의 향기를 보존하게 하였다. 뽑고 자르고 벗겨 내고 바꾸었다면 얼마나 아쉬웠겠는가? 한번 사라진 그 향기는 복원할 수 없다. 어느새 서늘해진 10월의 바람에 실려 산사의 역사가 하루만큼 깊어진다. 역사의 향기가 하루만큼 더 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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