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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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 승인 2020.10.2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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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네, 선생님. 공문 수정해서 올려주세요.”

학교 선생님과 업무 이야기로 통화 중에 한 말이다. 전화를 끊고 아차 싶다. 공문을 올려달라는 말이 무심결에 튀어나왔다. 지시하는 교육청이 아니라 지원하는 교육청을 지향하고, 명칭을 `교육지원청'으로 바꾸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어제 서울 올라갔다 왔어요.”

지인이 소식을 전한다. 사람들은 `서울로 올라간다.'고 흔히들 말한다. 강릉, 속초에서도 서울은 올라간다고 하니 단순히 위도 차이 때문은 아니다. 서울이 행정이나 교육, 문화의 중심지인 것은 분명하지만 상대적으로 지방을 낮추어보는 의식이 숨어있다.

“소고기는 좋겠다. 1등급이라서….”

아들이 고3일 때 식탁에 오른 소고기를 보며 한 말이다. 피식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오죽하면 소고기를 부러워할까? 등급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 받는 아이들에게 소고기 일지언정 1등급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무심코 주고받던 말들을 곰곰이 되짚어 본다. 박만규의 저서 「생각을 지배하는 프레임 대화법, 설득언어」에서 읽은 흥미로운 내용이 떠올랐다. 초등학생에게 강아지를 그려보라고 하면 하나같이 머리는 왼쪽에, 꼬리는 오른쪽에 그린다는 것이다. 그랬나? 인식하지 못했다. 별생각 없이 왼쪽부터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글씨를 왼쪽부터 쓰기 때문에 갖게 된 좌측 우위 프레임 때문이라는 것이다. 글씨를 오른쪽에서부터 쓰는 아랍권은 우측 우위 프레임을 갖게 된다고 한다. 배우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프레임이 수없이 많다.

강아지나 코끼리를 왼쪽부터 그리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떤가? 대립되는 두 가지 개념 중 한쪽이 강자이고 다른 한쪽이 약자일 때는 대개 강자를 앞에, 약자를 뒤에 놓는다. `강자 우위 프레임'이다. 남녀공학, 신랑 신부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강자 우위 프레임이 없던 말에도 서열이 생겼다. 60갑자에서 갑을은 시간의 순서일 뿐인데 갑을의 순서는 우열로 바뀌었다.

무심결에 사용하는 말에 프레임이 담겨 있고, 말은 다시 프레임을 견고히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형성된 프레임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어려운 대신 프레임을 바꾸면 새로운 사고로 전환할 기회가 생긴다.

말을 바꾸는 것은 프레임을 바꾸는 시작이다. 말이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탄생과 소멸의 과정을 거치는 사회적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말과 실상이 일치할 때 생명력이 살아난다.

익숙해 있는 성적 지상주의 프레임, 상하관계의 프레임을 바꿔나가면 좋겠다. 지향하는 바가 생명력을 갖도록 말에 담아본다. 까탈스레 보여도 작은 것부터 시도하려 한다. “공문 올려주세요.” 대신 “공문 보내주세요.”로 바꿔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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