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형으로부터
테스 형으로부터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10.2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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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나, 소크라테스여. 어인 일이냐고? 당신들이 불렀잖아? 한반도라는 데서 처음에는 한 놈이 이름을 줄여서 테스 형하고 부르더니만, 오만 사람들이 테스 형을 불러대는 거야. 심지어는 민회 의원인가 하는 인간들은 민회 하는 데서 테스 형을 부르더라구. 희한한 일이야.

도대체 왜 불렀을까? 가만히 들어보니. 세상이 왜 이러냐?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내가 모든 질문을 마다하지는 않지만 그건 내 소관이 아니야. 세상이 괴로우면 나한테 묻지 말고 자신에게 물어봐. 내가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을 때 천상과 지하의 일을 탐구한다는 죄목이 있었어. 나는 그런 거 탐구한 적이 없는데, 덮어씌운 거지. 나는 나서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에도 언제나 1 대 1로만 대화를 해. 한 사람을 제대로 구원하는 것도 어려운데 다수 사람을 내가 어떻게 잘 살게 해?

너 자신을 알라고 툭 내뱉고 간 말을 모르겠다구? 그걸 모르니까 괴로운 거야. `너 자신을 알라'는 원래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아폴로 신을 모시는 신전 마당에 새겨진 말이야. 그걸 내가 너의 무지를 자각하라는 뜻이라고 해석한 거지. 사람들이 원체 지만 잘났다고 하고, 또 그만 못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 밑에서 쩔쩔매면서 지내고 있잖아? 원래 삶은 뻐길 것도 없고, 움츠러들 일도 없는 건데 말이야. 세상에 태어난 걸 자랑스럽게 여길 것 없이 다들 고만고만한 건데 뭐 잘난 게 있다고 나대고 뭐 못난 게 있다고 쩔쩔매면서 살아? 스스로를 돌아보면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잘 알 수 있을 텐데.

뭔가 도모하고자 하니까 괴로운 거지. 인생이 괴롭거든 자신을 돌아봐. 거기에 해답이 있어. 자신을 어떻게 돌아보냐구? 너 자신이 정말 보잘 것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면 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신을 둘러보고 스스로의 무지함을 자각하면 세상의 괴로움은 사라진다. 내가 장담하지. 자신의 처지가 보잘 것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면 세상에 무서운 게 없어져.

사랑은 왜 이러냐구? 흐흐흐. 내가 답을 하면 당신들 말로 (크산)티페 누나가 나를 죽이려고 할 거야. 차라리 티페 누나에게 물어봐. 사람의 묘미, 쓴맛, 자식에 대한 사랑과 기대, 회한 이런 건 티페 누나가 전문이야. 나는 사랑에 관한 한 할 말이 없어. 나도 애인이 있기는 하지, 동성 연인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티페 누나가 속 좀 썩었을 거야. 얘기 들어보려면 티페 누나 불러.

천국이 있냐구? 내 기원전 399년에 죽었으니 죽은 지 2,400년이 흘렀구만. 내가 법정에서 죽는다는 건 꿈 없는 깊은 잠이거나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가는 일 중 하나라고 얘기를 했는데, 둘 다 대동소이해. 호메로스 선배, 헤시오도스 선배, 탈레스 선배, 파르메니데스 선배도 만나고, 후배 중에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도 잘 지내고 있지. 새까만 후배인 데카르트, 베이컨, 칸트, 헤겔도 자주 들려서 뭔가를 계속 물어서 사람을 귀찮게 하네.

여기 와보니까 저쪽 옆 동네에는 부처 형이 살고 있었고, 나중에는 이쪽 옆 동네에 예수 아우가 오더군. 틈틈이 만나서 가끔은 술도 한 잔씩 해. 포도주를 먹을까, 우조를 먹을까를 놓고 티격태격하기는 하지만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어.

정치하는 인간들은 죽은 이후로 못 봤어. 아마 딴 동네 가서 사나 봐. 소문에 의하면 개고생 하나 봐. 거기에도 정치인들 가는데 갈 인간들이 좀 있는 거 같네. 예술가 노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넘들, 알량한 철학적 말재주로 정치 편드는 쥐새끼 같은 넘, 신 팔아서 지 배 불리는 넘들은 이 동네 못 올 거 같아. 훈아 아우도 나 몰라라 하지 말고 철학 공부 좀 해. 정치하는 넘들하고 같은 취급 받지 않으려면.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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