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그래도 가을이다
가을은 그래도 가을이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10.2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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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학교 운동장을 둘러싼 나무들이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있다. 아이들이 밟지 않은 운동장은 잡풀들이 스름스름 생명을 키우더니 급기야 그 큰 운동장을 점령해 버렸다. 아이들의 운동화 발로 고개를 들지도 못했을 풀들이었다. 요즘 학교 운동장은 풀들을 제거하는 트럭들의 기계 소리로 요란하다. 아이들이 점심때면 매달리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던 나무들도, 운동기구도 모두가 침묵의 시간을 갖은 지 오래다. 마스크를 하지 않아도 지금 학교는 모든 것이 절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이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던 푸른 잎들도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는 서서히 몸을 말리며 바람을 기다리는 중이다.

요즘 나는 중학교 방역 일을 다니고 있다. 학년 별 2반씩밖에 없는 작은 학교이지만 부속 교실이 꽤 많은 학교이다. 지금은 3학년 아이들만 나오고 있어 3학년 교실과 자주 이용하는 부속 교실만 소독하고 있다.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에 책상과 복도를 소독해야 하므로 아침 7시 전까지는 학교에 도착해야 한다. 덕분에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걸으니 머리도 맑아지고, 시간도 공으로 더 많이 얻은 기분이다. 모든 학년이 다 나올 때는 얼마나 바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한 학년밖에 나오지 않아 소독하는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놀던 운동장이라든가 나무들과 화단의 꽃들에도 눈길을 한참씩 주곤 한다. 어느 날은 복도 출입구를 쓸고 있는데 밤새 떨어진 낙엽들이 출근하시는 선생님을 따라 현관문이 열리자 들어오는 것이었다. 물론 때마침 불어 온 바람 때문이었지만 그 모습이 마치 학교를 오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모습 같아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게 교실을 들어가고 싶어? 선생님들도 너희들이 많이 보고 싶을 거야!'

학교와 학원에 다니느라 몸과 마음이 부실한 아이들의 휴식을 원했던 게 언제였던가 싶다.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는 시간임에도 몇몇 아이들이 동네 공원에서 축구를 하고 있고, 밤늦도록 공부를 하고 끝날 시간이면 붐비던 학원 앞도 학생들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지루한 수업시간도 없고 무시무시한 시험도 보지 않으니 아이들은 행복할까? 하지만, 많은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건 아마도 학교가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학교는 다양한 체험 활동을 통한 현장 교육이 이루어져 즐거울 뿐 아니라 실생활에도 도움을 주는 소통의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또한, 학교는 부모와는 나누지 못하는 또래만의 생각이라든가 놀이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학교는 작은 사회라고 한다. 가정에서 배우지 못하는 규범을 관계를 통해 저절로 습득할 수 있으며 구성원들 간의 조화와 균형을 배울 수도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 당사자인 학생들뿐 아니라 부모들도 정신적 고통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지금은 집에만 있는 부모들은 거의 없다. 맞벌이 부부들이 대부분인 가정에서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매 끼니도 그렇거니와 집에 혼자 있는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도 걱정이다. 아이들 또한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대로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정신적으로 힘들 것은 뻔한 일이다.

일, 이학년 아이들의 등교가 금지된 것은 여름이 끝나가던 지난 9월이었다. 부지런한 교감선생님은 아이들의 발에 큼큼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 알이 밟힐까 아침마다 쓸어 모으시며 노심초사하셨다. 하지만, 은행 알이 다 떨어지도록 아이들은 학교를 오지 못하고 있다. 요즘 교감 선생님은 커다랗고 둥근 돌 화분에 가을을 닮은 국화를 가꾸시는 중이다. 그 마음이 닿은 걸까. 아이들의 등교가 시작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부디 아이들에게 교감선생님의 마음이 담긴 가을 국화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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