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0.10.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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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이별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열대우림 기후 속에 살고 있나?”이런 가사가 있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웃기면서도 박수를 쳤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상상 속의 이별장면은 늘 우중충하거나 비가 왔다. 해가 쨍쨍한 날과 이별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이별은 날씨와 무관하게 불현듯 찾아온다. 이른 아침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올 때도 있고 바라만 봐도 기분 좋은 날씨에도 온다. 산들거리는 바람과 맑고 푸른 하늘이 계속되는 이런 가을날에 찾아오는 이별은 봐줄 만하다. 울긋불긋 단풍들이 그까짓 이별 따위는 잊으라고 위로해 줄 것 같다.

이렇듯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요즘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이병률 저·문학동네·2020)'책이 제격이다. 시인이자 여행 작가인 저자의 시는 여행을 떠나듯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명 나는 시를 읽고 있는데 마음은 어느새 상해 식당에도 가 있고, 제주도의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시를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말장난 같은 시를 읽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은 나지만 이렇게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시는 실로 오랜만이다. 한 편 한 편 아껴두고 읽고 싶다. 매일 한 편의 시로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든 다음에 하루를 시작했으면 한다.

이별은 슬프기만 할까? 나는 작가의 시를 읽으며 또 다른 시작을 생각하며 힘을 얻는다. 일터에서나 집에서나 말랑한 마음을 오래 가지고 있기 어렵다. 건조하고 격식 있는 문서를 작성하고 아이의 하루를 점검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은 마음을 더욱 딱딱하게 만든다. 눈빛에서 감정이 없어지고 있다. 지켜보고 간섭하는 눈빛으로 하루를 사는 기분이다.

마음을 들뜨게 하는 가을날에 우리의 눈에도 촉촉한 감성을 넣어주면 어떨까? `우리의 어떤 일 같은 것들은 단추가 되어 매달리기도 하고 우리의 아무 일 같은 것이 단추가 되어 느슨히 떨어지기도 하는'단추가 느슨해지는 기분을 일상의 쉼표처럼 가지고 있고 싶다.

역시 작가의 글은 옳았다. 읽으면 늘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허공에 단어들이 떠다니는 기분이 들지만 한 권을 곱씹어 읽고 나면 가슴에 공기가 가득해진다. 때로는 따듯하게 때로는 시원하게, 가끔은 서늘하게 말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말랑말랑한 공기들로 내 일상이 조금은 더 발랄해 질 것이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따스한 말로 이야기하겠다. 오늘은 삭막함과 이별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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