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한가!
뭣이 중한가!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사무국장
  • 승인 2020.10.18 1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사무국장

 

SNS가 발달하면서 비밀은 거의 사라졌다. 인기 있는 아이돌의 과거 일진의 흔적을 찾아 매장시키고 고위직 관료나 정치인의 가족이 특혜의혹으로 곤욕을 치르는 모습을 언론에서 보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사실 정보통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도 저런 권력형 비리는 면면히 되물림 되고 소위 자본가와 있는 자의 `갑질'은 여전히 시공을 초월한다. 저런 기사에 댓글은 또 얼마나 잔인하고 인간성 말살적인지 기사도, 댓글도 읽어내기 흉한 세상이 되었다.

더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니 감이 안 온다. 그래서 뒤적이다 발견한 그림책 “양초 귀신”을 찾았다. 이 짧은 그림책은 4회기에 걸쳐 아이들과 토론 수업을 할 만큼 알차고 의미 있는 이야기다. 아주 오랜 옛날, 송 서방이 서울 구경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서울 자랑을 하며 양초를 세 자루씩 나누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양초를 어디에 쓰는지 몰라 갑갑했다. 선물 준 송 서방에겐 물어보기 쑥스러워 받은 사람끼리 알아보려 했지만, 도저히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는 것이 많기로 소문난 글방 선생에게 가져갔다. 글쎄 글방 선생은 양초를 보더니 말린 생선이라고 국을 끓여 먹으란다. 가늘고 뾰족한 것은 주둥이고 눈알 없는 생선 처음 봤냐면서 무식하다고 핀잔까지 듣는다. 드디어 마을 사람들과 글방 선생은 양초를 듬성듬성 썰어 끓는 물에 넣고 파도 썰어 넣고 소금도 친다. 국이 끓자 글방 선생은 양초 가져온 사람들에게 한 그릇씩 퍼준다. 그리곤 어떻게 되었을까, 국을 먹은 마을 사람들은 배앓이를 하지만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과 글방 선생은 처음 보는 물건 앞에 체면과 부끄러움 때문에 자기네끼리 해결하려다가 물속에까지 빠지게 된다. 나중에서야 송 서방이 당신들이 먹은 것은 양초고 불을 붙여 주위를 환히 밝히는 것이라고 하자 이번엔 뱃속에 불이 났다며 글방 선생을 따라 모두 물속에 뛰어든 것이다.

아이들과 저런 소동이 일어난 것은 누구의 잘못이 가장 큰가를 놓고 토론한 적이 있다. 새로운 것을 들여왔으나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은 송 서방인가, 아니면 무식한 촌놈이라는 소릴 듣기 싫어 식자(識字)를 무조건 따라 한 마을 사람들인가, 글방 선생 역시 자신의 체면 때문에 아는 체로 잘난체하며 사람들을 괴롭게 했다. 어떤 아이가 갑자기 세월호 이야기를 꺼냈다. 위험이 찾아올 수도 있는 상황에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 송 서방이 잘못했다는 아이는 배가 침몰할 수도 있는데 알려주지 않고 혼자만 탈출한 선장이 생각난다고 했다. 거참, 기막힌 해석이었다. 이날 수업은 동네 사람들, 즉 민중의 주체적인 각성을 말하고 싶었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말았지만, 토론의 즐거운 맛이기도 하다.

요즘은 검색 하나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유튜브 영상만 봐도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많은 것이 공개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주체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도 관성대로 이 정도는 다들 하니까 하는 정치가의 되잖은 잘못과 자신은 그래도 되는 `갑질'의 끝판왕 사모님 캐릭터는 발붙이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남이 하니까 따라하다 물속에까지 빠진 동네 사람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나 자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비밀을 좇아 파헤치며 난도질하는 것보다 `나다움'을 발견하는데 시간 쓸 것을 권한다. 숨 가쁘게 뒤쫓아 가는 길은 힘들다. 내가 발견한 길을 갈 때, 아니 남이 이미 올라간 길을 가더라도 `나 자신'이 되어 갈 때만이, 오롯한 걸음으로 나의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