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와 은거 사이의 안온한 마음자리, 청주 월송정(月松亭)
출세와 은거 사이의 안온한 마음자리, 청주 월송정(月松亭)
  • 김형래 강동대 교수
  • 승인 2020.10.1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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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선-땅과 사람들
청주 월송정 전경.
청주 월송정 전경.

 

누정은 선인들의 풍류문화의 중심지이며, 옛 선비들이 각박한 현실을 탈피하여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정신적 즐거움과 호연지기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고의 발현지이기도 하였다. 건물에는 꼭 이름이 붙어 있으며, 건물 안에는 상량문, 창건기, 중수기 등의 문장과 시인들이 남겨 놓은 현판시가 있다. 조선시대 16세기에 접어들어 누정은 지방의 사림세력들에게는 특별한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단순히 시를 읊거나 술을 마시며 즐기는 장소가 아니라 선비들의 높은 이상과 투철한 학문정신을 실현하는 곳이 되기도 하였다.

월송정은 청주시 현도면 시목리 새터말 서북쪽에 있는 남산(79m) 정상에 동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강 건너로는 매화낙지형(梅花洛地形)의 명당이 있다는 매방산(梅芳山, 182m)과 마주하고, 절벽 아래로 많은 사연을 간직한 금강이 유유히 흐르며, 오래된 소나무가 시위하듯 정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월송정 주변은 시인 문객들이 팔경시를 읊을 만큼 예로부터 절경으로 유명하였다. 정자 내부에 걸려 있는 `마포귀범(馬浦歸帆, 마포나루로 돌아오는 돛단배)'이란 오유립이 지은 시를 통해 당시의 평화롭고 서정적인 풍경을 상상해 볼 수가 있다.

월송정이 있는 시목리는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다. 이곳은 토양과 기후조건이 감나무가 자라기에 알맞다고 한다. 지금도 윗감나무골, 아랫감나무골 등 자연마을이 있다. 월송정에서는 여러 자연마을과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시 월송정에서 내려다보는 늦가을 감나무가 있는 마을풍경은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월송정은 광해군 때 오유립(吳裕立, 1575~1658)이 세운 정자이다. 오유립은 어려서부터 학식과 문장이 탁월하였다. 1613년(광해군 5)에 광해군의 실정(失政)을 보고 벼슬길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 월송정을 세우고 은거하면서 시를 읊는 것을 즐겼다. 또한 오명립(吳名立)·오시립(吳時立) 등과 함께 문의(文義)에 송인수(宋麟壽)를 모실 노봉서원(魯峯書院)을 건립하였고, 후학을 가르치는 등 향풍(鄕風)을 진작시켰다. 월송정에서 남쪽으로 약 2㎞ 정도 떨어져 족형(族兄) 오명립이 세운 지선정이 있는데, 오유립은 이곳에서 강변을 따라 오명립과 왕래하면서 심회(心懷)를 다스렸다.

현재의 월송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외벌대의 낮은 기단 위에 사다리꼴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고, 사방이 트여 있는 전체가 마루인 구조이다. 정면을 제외한 3면의 중인방 위로는 홍살을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내부에는 1779년(정조 3)에 송환기(宋煥箕, 1728~1807)가 쓴 “한수추월(寒水秋月)”과 “대동정송(大冬挺松)”이란 현판과 1882년(고종 19)에 송근수(宋近洙, 1818~1903)가 쓴 중수기 및 여러 기문과 시판이 걸려 있다.

“한수추월(寒水秋月)”은 중국 남송의 대유학자 주자(朱子)의 시 `재거감흥(齋居感興)'중 한 구절인 `추월조한수(秋月照寒水)'에서 온 말이다. 차가운 물에 비추인 가을 달빛처럼 오유립(吳裕立)의 맑고 깨끗한 인품을 생각하며 썼을 것이다. 또한 “대동정송(大冬挺松)”은 한겨울의 빼어난 소나무를 의미하니, 오유립(吳裕立)의 정신과 소중한 가르침을 받들어 배우고, 또한 그 가르침을 영원히 후학들이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을 것이다. 아마도 정자의 이름도 두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형래 강동대 교수
김형래 강동대 교수

 

현재 월송정은 마당 앞에 일각문을 세우고 담장을 높게 둘러 개방감 있는 정자의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옛 선비들은 자신의 뜻이 세상에 통하지 않으면 산속 깊숙이 들어가 고답(高踏)을 추구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임수대산(臨水對山)한 활연한 터에 정자를 짓고 대자연을 멀리서 바라보며 즐기기도 했다. 주위 경관을 둘러보기 좋은 입지조건을 가진 월송정이 초창 때의 정자 본연의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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