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뒤샹, 레디메이드 모나리자(L.H.O.O.Q)
마르셀뒤샹, 레디메이드 모나리자(L.H.O.O.Q)
  • 이상애 미술학박사
  • 승인 2020.10.1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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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1917년 마르셀 뒤샹이 미술계에 던진 폭탄-<샘 Fountain>- 이후 레디메이드라는 새로운 조형언어는 현대미술에 새로운 장을 여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 뒤샹은 <샘>에 이어 레디메이드를 활용한 또 다른 작품들을 잇달아 제작하며 미술작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그의 <샘>이 미술계의 반응에 의해 작품으로 완성되었다면, 그의 1919년작 는 모나리자 이미지를 차용하여 패러디함으로써 직접 미술계를 향하여 언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는 흔히 기념품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인쇄된 레디메이드 엽서로서 뒤샹은 모나리자의 얼굴에 남성의 성적 정체성을 의미하는 콧수염을 그려 넣음으로써 원본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 가치에 변형을 가한다. 이 레디메이드 엽서는 단지 진본을 대신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는 아우라에 대한 상징성만 지닐 따름이다.

뒤샹의 단순한 제스처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모나리자는 미술작품은 기본적인 기법을 갖추어야 한다는 기존의 아카데미즘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예술의 범주를 벗어난다. 그리고 예술의 범주를 벗어난 비회화적 미술작품은 본질적으로 다른 해석이 요구된다. 미적으로 어떤 아름다움도 추함도 지니지 않는 레디메이드 오브제가 작가의 개입으로 일상적인 사물의 용도에서 분리되어 관념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림은 시각적인 것뿐 아니라 사유될 수 있다는 관점으로서 시각적 감수성에서 분리되어 인식론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왜 뒤샹은 이상적인 여성상이라는 육체의 옷을 입고 있는 모나리자의 얼굴에 낙서를 함으로써 성적 정체성을 지워버리려 하였을까? 여성 성이 거세된 모나리자는 무엇을 은유하는가? 뒤샹은 예술제도 안에서 관례화된 모나리자를 패러디함으로써 유명 작품에 대한, 여성이 그려진 아카데미 미술에 대한 은유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통적으로 이상화된 정숙한 여성상의 상징을 지워버림과 동시에 부르주아 사회가 형성한 대중적 요구에 의한 예술적 취향과 그 사회 속에서의 예술 작품의 수용태도에 대한 비판이다. 이 훼손된 복제그림은 예술계에서 수용된 그림 자체를 부정하며 기존의 심미적 가치를 해체하고 미적 관계의 질서를 재구성한다. 뒤샹은 그려진 실재와 그것이 재현된 이미지,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감상자의 개념화 등의 구별에서 미적 가치가 변화되어야 할 것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레디메이드 선택은 하나의 선택이 우연한 사건들의 집합이 아니라 예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것은 예술에서 표상적 내용이나 매체적 특징이 더 이상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며 제도를 부정하는 반항이 이면에 깔려있다. 미술계의 진부함, 위선적 태도를 작품으로 비평한 그의 제스처는 `미술작품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반항적이고 전위적인 선언이 어떻게 작품이 되는가?'를 보여주며 기존의 아카데미즘을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질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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