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보완
과보완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0.10.1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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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올해는 근무하는 대학에서 보직을 맡아 수행 중이다. 보직이라는 말에 드러나 있듯이 이미 일정한 업무가 배정되어 있는 그 자리가 올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들까지 겹쳐져 결정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많은 그야말로 바쁜 자리가 되었다. 그 자리에는 여러 현안이 있지만, 최근에는 강의계획서 양식을 정비하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강의계획서에는 강의 전반에 대한 여러 정보가 담긴다. 교육과정에 담긴 강좌의 목표와 성격은 물론 수업과 평가 방법, 강의를 통해 얻게 될 기대효과, 수업 진행상 유의사항, 주별 상세 강의 계획 등등 강좌의 밑그림이자 청사진이다. 이번 정비 과정에서는 필요한 여러 요소를 배치한 후 여러 교수님께 예비 검토를 받아보았다. “장애학생은 어쩌죠?” 한 교수님이 보내신 의견에 그만 멍하고 말았다. 아직도 멀었다. 언제나 생각해야 하는 다양성과 배려를 잊어버리기 일쑤니 말이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는 새 학기부터 학교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였다. 그런데 선생님이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입 모양을 보고 대화 내용을 파악하는 청각장애학생이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유치원생은 학습에 여러 모양의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프랑스는 이번 가을까지 모든 유치원 선생님과 학급에 청각장애학생이 있는 선생님에게 입이 보이는 투명 마스크를 지급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마스크 배려라고나 할까?

또 중국 교육부도 최근 장애 아동·청소년 교육을 위한 `지도 의견'을 발표하고, 앞으로 장애학생이 일반학생과 동일 학급 내에서 학습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는 장애학생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하며, 특수교육을 더욱 중시하고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지도 의견'은 방향성만을 천명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장애학생을 위해 근거리 입학 제도를 정착시키고, 우선 입학 원칙을 고수하며, 중도 탈락 방지를 강화하도록 하는 등 실제적인 방법까지 명시하여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장애에 대한 배려는 우리 가까이에 언제나 존재한다.

비고츠키는 장애를 일종의 손상으로 보았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생물적·정신적·사회적인 면에서 부족한 점, 즉 손상을 가지고 있으며 손상은 인간 발달의 원동력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 발달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손상성의 역사이며, 인간발달은 항상 사회적으로 이 손상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는 이러한 발달 원리가 모든 인간 발달에 적용된다고 밝혔다. 장애를 가진 사람만이 손상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손상을 가지고 있고, 그 손상을 기화로 발달한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그럼 손상은 어떻게 해야 발달의 원점이 될까? 비고츠키는 손상과 발달의 관계를 `과보완'(overcompensa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과보완이란 손상을 필요 이상의 활동으로 보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비고츠키는 과보완의 예로 몸속에 균이 침입했을 때, 우리 몸이 균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백혈구를 내보내는 것을 들었다. `병적 상태를 보다 건강한 상태로, 약한 상태를 강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 과보완은 그렇게 우리를 성장시키고 발달시킨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손상을 발판 삼아 풍부한 과보완 속에서 성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의계획서의 작은 변화는 그 과보완의 출발점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출발을 발판으로 삼아, 우리 대학이, 그리고 한국교육 체계 전체가 다양한 손상을 가진 우리 모두를 위한 과보완의 현장, 풍부한 교육적 모범의 사례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어쩌면 가을의 이 아름다운 풍경도 신이 우리에게 선물한 과보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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