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화장실 비상벨 심부름꾼 호출벨 전락
공중화장실 비상벨 심부름꾼 호출벨 전락
  • 조준영 기자
  • 승인 2020.10.12 1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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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지역 “휴지 좀 갖다 주세요” 등 단순민원 빗발
경찰 집계 신고 건수 789건 중 강력범죄 상황 전무
취객 고성에 오인출동도 비일비재 … 공권력만 낭비

최근 청주지역 한 지구대에 지령이 떨어졌다. 충북지방경찰청 112종합상황실로부터 받은 지령은 `코드2'. 긴급 출동을 요하진 않으나 경찰관이 직접 현장에 나가 조치를 해야 하는 신고였다.

장소는 담당 지역 내 공원 여성화장실. 허나 당시 근무 중이던 지구대 경찰관은 신고 내용을 보고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요. 휴지 좀 갖다주세요.”

그랬다. 신고자가 비상벨을 누른 건 지극히 개인적인 `민원' 때문이었다. 결국 경찰서 차원에서 출동 여부 재검토 요청이 이뤄졌고 112종합상황실은 신고 접수 10여분 만에 비(非)출동 종결 처리했다.

웃지 못할 사연은 경찰 내부망을 통해 알려져 현직 경찰관들 사이에서 한동안 논란거리가 됐다. 대다수 경관은 `해도 너무한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지령을 받은 경찰관은 “이럴 때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여자화장실로 휴지를 갖다줘야 하냐”고 반문한 뒤 “우리 경찰 스스로 조직에 대한 자존감을 상실시키는 행동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범죄 예방 목적으로 도내 공중화장실에 설치한 비상벨이 심부름꾼 호출 버튼으로 전락하고 있다.

12일 충북도에 따르면 비상벨이 설치된 도내 공중화장실은 모두 358개소다. 지역별로는 △청주 123개소 △보은 57개소 △음성 43개소 △제천 34개소 △진천 29개소 △충주·단양 각 18개소 △옥천 17개소 △증평·괴산 각 8개소 △영동 3개소다.

공중화장실 비상벨은 누르면 경찰 112상황실과 자동으로 연결된다. 동시에 위치 파악까지 이뤄져 범죄나 위급 상황을 막는 역할을 한다.

지자체가 설치·관리하고, 경찰이 대응에 나서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애초 취지와 달리 비상벨을 통해 긴급 신고 대신 단순 민원만 쏟아지고 있다.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사적인 부탁부터 황당한 요청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도내 일선 지구대 경관은 “비상벨을 긴급 신고 용도가 아닌 민원 접수창구로 생각하는 시민이 적잖다”라며 “가끔 들어오는 신고 내용을 보면 황당한 기분이 들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상벨이 비명, 폭행·구타와 같은 이상 음원에 반응하는 까닭에 오인 출동까지 속출하고 있다.

실제 일선 현장에선 비상벨이 설치된 공중화장실에서 취객이 고성을 질러 순찰차가 급파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상 음원 감지로 이뤄지는 신고는 성폭행이나 강도 같은 강력 범죄로 판단돼 `코드 0' 지령으로 이어진다.

코드 0은 경찰 업무 매뉴얼 중 위급사항 최고 단계로 전 경찰력이 동원된다.

결과적으로 단순 민원과 오인 신고 탓에 공권력만 낭비되는 셈이다.

경찰이 집계한 올해(1~9월) 도내 여성 화장실 비상벨 신고 건수는 789건(작동테스트 제외)이다.

유형별로 보면 △오작동 372건 △장난·실수 29건 △기타 388건이다. 비상벨 신고 중 실제 강력 범죄 상황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경찰관은 “단순 민원이나 허위신고 등이 지속하면 경찰관 업무 가중은 물론 긴급 상황 발생 시 초기 대응 실패 확률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시민 전체가 경각심을 갖고 본래 목적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준영기자
reason@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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