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산속에서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10.1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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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또 가을이다.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산을 떠올리곤 하는데,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산은 가을이 인간들에게 보낸 선물들의 집하장이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맑은 바람, 울긋불긋한 단풍, 이 모든 것들이 산속에 들어 있다. 이런 가을 산속을 거닐면서 길을 잃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이(李珥)도 가을 산속의 보물에 홀려 길을 잃고 말았다.

산속에서(山中)

採藥忽迷路(채약홀미로) 약초를 뜯다가 갑자기 길을 잃었는데
千峰秋葉裏(천봉추엽리) 수 많은 봉우리가 가을 낙엽 속에 들어있네
山僧汲水歸(산승급수귀) 산승이 물 길어 돌아가더니
林末茶烟起(임말다연기)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피어오르네

시인이 산에 간 것은 약초를 채취하기 위함이었다. 약초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기 쉽고, 그러다 보니 그것을 좇아 무작정 다니다 보면 길을 잃는 것이 다반사이다. 시인도 약초에 몰두하여 길 아닌 곳을 헤매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보통 산에서 길을 잃고 나면 당황하기 마련인데, 시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산속 깊숙이 들어가 길을 잃은 시인은 약초보다도 더 귀한 보물을 발견했다. 그러니 당황하기는커녕 넋을 잃고 보물에 빠져들고 말았다.

깊은 산 속에서 시인이 만난 보물은 다름 아닌 멋들어진 그림 같은 가을 풍광이었다. 멀리로는 족히 천 개는 됨직한 산봉우리들이 하나같이 모두 낙엽 속에 묻혀 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로는 물 긷는 산승과 그가 산사로 돌아가 차를 끓일 때 나는 연기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약초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그림이 아닐 수 없다.

가을 산속은 보물 창고이다. 세속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서만 세월을 허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가을의 보물들이 가득 차 있는 곳이 산속이다. 바쁜 일상을 과감히 버리고 가을 산속에 들어가 보라. 인생의 새로운 멋과 맛이 그대들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이니.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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