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건 없다
당연한 건 없다
  • 류충옥 수필가·청주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20.10.1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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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성화초 행정실장

 

코로나 19로 지구촌은 몸살을 앓고 있지만, 대기권은 안정을 찾고 있는지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을 자주 보여준다. 가을이면 당연하던 파란 하늘을 최근 몇 년간 보기가 어려웠다.

미세먼지에 점령당해서 아이들은 운동장을 빼앗겼고 좁은 교실에서 공기청정기에 의존해야 했다. 참다못한 자연이 어쩌면 바이러스를 퍼뜨려 인간을 통제하고 스스로 정화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사람들을 마음껏 만나지 못하는 대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기온도 적당하고 먹거리도 풍성하고 게다가 맑은 하늘과 단풍의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우리나라 가을은 애석하게도 오랜 시간 주어지지 않는다. 코로나 무서워 집안에만 있자니 답답하여 황금연휴에 남편을 따라나섰다.

군산에서 새만금방조제를 따라 들어가면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고군산군도가 있다. 예전에 차편을 이용하여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선유도까지는 여러 번 와봤었다. 그러나 이번엔 배를 이용하여 제일 끝쪽에 있어서 이름 붙여진 말도(末島)라는 곳으로 갔다.

사실 처음의 목적은 바다낚시였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서인지 뱃멀미가 나서 나는 말도라는 작은 섬에 내렸다. 울렁거리는 멀미를 진정하자 심심하기도 하고 구경도 해 볼 겸 작은 섬마을을 거닐었다. 작은 바위섬에 달랑 한그루 외롭게 서 있던 천년송과 바위틈에서 꽃을 피우며 소나무와 벗 삼은 해국도 인상적이었다. 그 옆쪽에는 일제강점기에 정략적인 목적으로 세워졌다는 말도 등대가 있어 올라가 보니 바다 위에 낚시 배들이 떠 있는 모양이 마치 장난감 배로 군함 놀이를 하는 듯 보였다.

끝 섬 말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섬을 이루고 있던 바위 모양이다. 해안 길을 따라 가보면 섬을 절단한 듯 보이는 단면의 습곡 지형이 마치 엿가락을 휘어놓은 듯하다. 중생대 쥐라기에 형성된 이 습곡은 원래 얕은 바다에 쌓여서 이루어진 퇴적암이 지각운동으로 융기하면서 옆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파동 상으로 주름이 생기게 된 지층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습곡 지형의 바위를 보며 5억년 이상의 역사를 묻고 숱한 파도와 바람을 견디며 지금까지 버텨준 노고에 감사를 보낸다. 더는 자연 훼손을 금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도 절실해진다.

섬 주민에게 아름다운 곳에 살아서 좋으시겠다고 하니까 매일 봐서 잘 못 느낀다고 하신다. 그렇다. 과거엔 가을 하늘이 파랗고 높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미세 먼지를 통하여 가을 하늘을 빼앗겨 본 후에 당연함은 없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느끼지 않고 가끔은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으나, 각자 추구하는 삶은 제각기이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의 노트는 자기만이 적을 수 있다. 여행을 가서 색다른 환경에 접해보면 나 자신의 틀을 깨고 새로움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 낚시하러 가면 물고기를 낚는다는 당연함은 이제 나에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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