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모산방
갈모산방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0.10.0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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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장 (진천주재)
공진희 부장 (진천주재)

 

보탑사로 향했다. 잣고개를 오르며 가을의 향기를 맛보고 싶어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런데 뒷차가 굉음을 내며 맹렬하게 따라붙는다.

마침 오르막차로가 나타나 오른쪽으로 비켜주자 꽁무니에 바짝 붙어 추월기회를 엿보던 녀석이 잽싸게 추월선으로 나서며 또다시 앞선 차들을 재촉한다.

코로나 때문인지 지난해까지도 성묘 흔적을 남기던 인근 산에 올해는 바람만이 나들이를 하고 있다.

도로 정상을 지나 사석 쪽으로 내려가자니 고교시절 추석명절을 맞아 자전거를 타고 청주와 고향집을 오가며 이 고개를 넘던 기억이 떠오른다.

격렬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버스 뒤를 따라잡던 나를 향해 버스 뒷좌석에서 손을 흔들던 친구들의 환한 얼굴이 생생하다.

무모해 보일 정도로 패기가 넘치던 그 소년은 이제 세월의 때가 묻은 아저씨가 되어 자전거 대신 자가용 핸들을 쥐고 그 고개를 넘고 있다.

상념에 젖다 보니 어느덧 차는 병천과 연곡리, 백곡으로 갈라지는 보탑사 삼거리에 이르렀다.

진천 연곡리 보련산 자락에 보탑사가 자리 잡고 있다.

연곡리는 더덕봉 약수봉 옥녀봉 등 아홉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마치 한송이 연꽃이 핀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경내에 있는 통일대탑은 높이 43m에 이르는 웅장한 3층 목탑이다.

이 목탑은 연꽃의 꽃술을 상징하는 한편 김유신 장군이 민족통일을 이뤄냈듯 한반도의 통일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목수 신영훈의 역작이다. 그는 숭례문을 비롯해 경주 토함산 석불사, 순천 송광사 대웅보전 중수 및 보수 공사 감독관을 지냈고 경북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진천 보탑사 삼층목탑 등의 총감독으로 활동했다.

덴마크 국립박물관 백악산방(사랑방), 멕시코 차플텍 공원 한국정, 파리 고암서방(이응로 화백 기념관) 등 해외에도 우리나라 고유의 건축미가 담긴 건물을 남겼다.

한옥에 발을 들여 놓은 애기 목수 시절, 책과 방송을 통해 한옥의 미학적 가치와 과학적 원리를 들려 주던 신영훈 선생은 지난 5월 별세했다.

이 통일대탑은 사방 어느 곳에서 둘러봐도 추녀의 양끝이 가운데보다 솟아 있다.

한옥의 팔작지붕은 정면에서 보았을 때 양쪽 추녀 끝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 있다.

추녀 곁의 도리 위에 서까래를 걸기 위하여 한쪽 머리는 두껍고 다른 한쪽 머리는 얇게 깎아서 붙이는 삼각형의 나뭇조각이 있다.

바로 갈모산방이다.

한옥 팔작지붕의 날렵한 지붕모양을 내기 위해 쓰이는 부재이다.

추녀 밑을 파고들어 도리 위에 놓인 갈모산방은 기다란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갈모산방은 한옥 지붕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부재지만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곡선과 직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눈 호강을 시켜 주는 한옥의 지붕 선을 바라보자니 이제껏 대체로 직선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온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좀 더 빨리 목표를 이루고 싶어 지름길로 가는 방법을, 문제가 생기면 돌아가는 길보다 정면돌파를 택한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것들은 직선만이 아니라 U자 형태도, S자도, 완만한 곡선의 형태로도 존재한다.

그러고 보니 학창시절 교과서의 그래프는 직선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곡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직선의 몸으로 서까래를 받아내 유려한 지붕의 처마 선을 만들어 내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갈모산방에게 크게 한 방 얻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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