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들
남겨진 것들
  • 박소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 승인 2020.10.0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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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소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박소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꽤 길었던 추석 연휴가 지나갔다. 명절이면 으레 온 친척들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물으며 차례를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는데, 코로나19가 우리의 명절 풍경도 바꾸어 놓았다. 영상통화로 안부를 묻고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는 것이 오히려 효도라고 하였다.

연휴동안 이동을 자제하고 집콕하기를 권장하며, 좀 더 즐거운 집콕 생활을 위해 곳곳에서 비대면 온라인 콘텐츠를 제공해주었다. 그중 문화재청에서는 `궁궐에서 즐기는 가을밤 퓨전국악공연 - 가을밤 달빛공연'을 제공하였는데, 힘들여 찾아가지 않더라도 내 방에서 궁궐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력적이었다.

이 새로운 재미에 빠져 공연을 한창 즐기다 보니 문득 경복궁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일까, 언제부터 사용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궁궐과 내부 전각의 이름을 지어올리라고 명하였다. 고려 말 정몽주와 다른 선택을 하였기에 늘 비교당하며 한동안은 역사 속에서 제대로 된 평을 받지 못하였던 정도전.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경복궁 곳곳에 그의 손길이 남아있는 것이다. 경복궁의 `경복(景福)'은 `군자가 만년동안 큰 복을 누리리라'라는 뜻이며, 근정전은 `부지런히 정치를 하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정도전은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 중 『시경』, 『서경』 등을 참고하여 궁궐과 전각의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그 이름만으로도 그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꿈꾸었던 것이 무엇이었을지 조금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아 정도전은 이방원의 손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그가 세우고자 했던 이상향은 궁궐의 이름 속에 남아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여전히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충북지역에도 정도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있다. 남한강 물길 가운데 3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하여 삼봉이라 이름 붙은, 바로 단양 도담삼봉이다.

정도전은 이곳을 너무 사랑하여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짓기도 하였다. 또한, 이곳에는 정도전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원래 강원도 정선에 있던 삼봉이 홍수가 심하게 나자 물길을 따라 떠내려와 단양에서 멈춰버렸다. 이에 정선군수는 떠내려 온 삼봉에 대한 세금을 단양군에서 내라고 요구하였다. 어쩔 수 없이 매년 정선군에 세금을 낼 수밖에 없었던 단양 사람들의 불만이 가득해진 어느 날 어린 정도전이 나섰다. “이 삼봉은 우리가 떠내려 오라 한 것이 아니니, 필요하면 다시 가져가시오! 오히려 물길이 막혀 우리는 계속 피해를 보고 있으니, 더 이상 삼봉 몫의 세금을 정선군에 낼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정선군수는 어쩔 방법이 없어 더 이상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도담삼봉은 명승 제4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가장 중앙의 높은 봉우리에는 삼도정이라는 정자가 조성되어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이곳은 2019년 관광객들이 즐겨 찾은 10대 관광지 중 하나로 연간 460만명 이상이 다녀갔다고 하는데, 그 아름다움은 과거부터 계속 이어져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도담삼봉은 정도전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많은 선비가 즐겨 찾았던 곳으로, 퇴계 이황, 김정희, 김홍도, 정선 등이 남긴 시와 그림이 남아있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풍류와 사색을 즐겼던 선비들처럼 자유롭게 도담삼봉을 거닐어보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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