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창신'의 정신을 간직한 송천서원에서
`법고창신'의 정신을 간직한 송천서원에서
  •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 승인 2020.10.0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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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충북도교육청이 몇 년 전 신년 화두로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라는 뜻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제시한 적이 있다.

당시 김병우 교육감은 “`함께 행복한 교육'을 실현하고자 하는 충북교육청이 나가야 할 바가 이와 같다”면서 “올곧게 지켜나가야 할 부분과 쇄신해야 할 부분을 지혜롭게 분별하면서 교육의 중심을 잡아 나가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유학 경전에 바람직한 선비상으로 `법고창신 정신으로 고전 속 고전에서 새 길의 출발점을 찾고 역사 속에서 길의 방향을 물어야…'라면서 `군자가 어질지 않으면 어찌 군자라 할 수 있겠는가. 군자는 밥 먹는 순간에도 인을 어기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급한 때라도 반드시 인에 근거해야 하고, 위태로운 순간일지라도 반드시 인에 근거해야 한다.'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법고창신의 정신을 간직한 유적이 우리 고장에 있다. 바로 청주시 향토유형문화재 제118호로 지정된 청주시 옥산면의 송천서원(松泉書院)이다.

송천서원은 1695년(숙종 21)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사렴·최유경·이정간·박광우·이지충·조강·이대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옥산면 송천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11년에 `송천(松泉)'이라고 사액 되었으며, 이지충·조강·이대건·이제신·이인혁·최석정·남구만·박문수·이종성·이효석·김여량 등을 추가 배향했다.

서원의 건립은 본래 향촌 유림에 의하여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국가가 관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서원이 지닌 교육 및 제사적 기능이 국가의 인재양성과 교화정책에 깊이 연관되어 있으므로 조정에서 특별히 서원의 명칭을 부여한 현판과 그에 따른 서적·노비 등을 내린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특전을 부여받은 국가공인의 서원을 사액서원이라 하며 사액 받지 못한 서원과는 격을 달리하였다.

송천서원은 이렇듯 국가 공인의 서원으로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고 말았다. 광복 후 지방 유림이 복원계획을 공의하여 오던 중, 국고 보조를 받아 1975년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5칸의 사우, 중앙의 모현문과 양옆의 협문으로 된 삼문, 4칸의 모현재, 5칸의 수호사, 정문 등이 잘 복원되어 있다.

사우에는 김사렴을 주벽으로 좌우에 최유경·이정간·박광우·이지충·조강·이대건·이제신·이인혁·남구만·최석정·박문수·이종성·이효석·김여량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재실은 제향 때 제관들의 숙소와 강학 장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수호사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가 사용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 20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7변 7두이다. 송천서원의 재산으로는 대지 750평, 논 2000여평 등이 있다.

송천서원 담장을 따라 오르면 초보자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청주의 명산 목령산(해발 228m)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약간의 경사로가 나타나며 잘 만들어진 계단과 산책길은 산행의 즐거움을 더하여 준다.

이번 주말에는 송천서원에서 법고창신의 정신을 되새기고, 목령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 가을이 오는 맑은 고을 청주를 360도로 바라보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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