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짓, 맞습니다
나쁜 짓, 맞습니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10.04 1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이번에는 장관 남편이다. 법무장관 아들의 군복무 시절 석연찮은 휴가연장 의혹이 검찰의 관련자 전원 불기소 결정으로 일단락 되는가 싶던 터였다. 꼬리를 문다고나 할까. 강경화 외교장관의 남편이 그제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행선지는 바로 전날 대통령 부부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미국이다. 최종 목적지는 최근에도 하루 1000명 안팎의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는 뉴욕이다. 뉴욕 주지사는 지난달 29일 보다 강력한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코로나 위험 2~3단계로 분류된 국가에서 온 여행객의 14일 격리를 의무화 한 것이다. 한국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3단계로 지정한 국가다. 강 장관 남편은 뉴욕주의 행정명령 대상이다. 그가 이런 위험과 불편을 무릎쓰고 강행한 여행 목적은 요트 구입이다. 수억원에 달한다는 그 요트로 미국의 친구들과 동부 해안을 일주할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우리 외교부는 모든 국가에 대해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 중이다. 지난 3월 첫 발령 후 두 차례 연장했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외교부는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국민께서는 여행을 취소하거나 연기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외교부의 읍소를 귓전으로 흘리고 당당히 해외여행을 떠난 국민은 다름아닌 외교장관의 남편이었다.

강 장관은 국민을 볼 면목이 없게 생겼다. 가족도 지키지 않는 해외여행주의보를 국민에게 발령했다는 조롱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당장 야당과 언론의 공세에 시달릴 터이고, 내부의 눈총도 견뎌야 할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처할 곤경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가 국민에게 해외여행 자제를 주문해야 하는 아내의 위치를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이런 여행은 생각도 말았어야 했다. 미국에서 요트를 사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싶은 욕구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면 쥐도새도 모르게 은밀히 추진했어야 했다. 아내를 봐서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가 여행을 몰래 계획하고 실행한 것 같지는 않다. 이미 한 달전에 자신의 블로그에 이번 여행의 목적과 일정, 비행기표 구매까지 세세히 공개했다고 한다. 이 자기과시가 출국하는 날 언론을 공항으로 불러들이는 화근이 됐다.

공항에서의 그의 대처는 더 황당했다. “나쁜 짓을 한다면 부담이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 삶을 사는 것을 다른 사람의 생각 때문에 양보해야 하나. 모든 걸 다른 사람 신경 쓰면서 살 수는 없잖은가”. 그가 공항에서 “공직자 가족으로서 부담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했다는 말이다. 정부 방침을 쫓아 추석 성묘까지 미룬 국민은 졸지에 줏대없는 소심쟁이들로 전락했다.

정부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관리하고 있다지만 해외에서 유입되는 코로나가 여전히 적지않은 실정이다. 해외여행주의보가 계속 연장되는 이유이다. 이런 판국에 코로나가 창궐하는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장관의 남편은 흔해빠진 변명 한마디 없었다. 대신 `내삶을 사는 데 다른 사람(아내도 포함될 듯) 신경까지 써야겠느냐'는 소신으로 맞섰다.

그 오만의 근원이 궁금하다. 여당은 야당의 공격을 받는 법무장관 아들을 위해 안중근 의사까지 동원하며 철벽 방어막을 쳤다. 이어 검찰은 고발된 전원을 불기소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법적 시비를 말끔하게 정리했다. 여권의 이 `일사불란'이 장관 남편의 일그러진 소신에 자신감까지 얹어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쨋든 강 장관의 해명이 궁금해진다. 다른 장관처럼 “나는 남편에게 여행을 지시하거나 그에 대해 보고받은 바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차리리 세간에 나도는 우스개소리를 해명으로 대신했으면 좋겠다. 코로나에 감염된 트럼프 대통령을 위문하기 위해 파견했다고. 남편이 비밀 임무를 맡았기에 언론에도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고. 구차한 변명으로 다시 국민의 울화를 터트리기 보다는 실소라도 짓게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