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해바라기 꽃
가을 해바라기 꽃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09.2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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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가을은 봄 못지않게 꽃의 계절이다. 국화로 대변되는 가을꽃이지만, 모든 꽃을 통틀어서도 얼굴이 큰 걸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게 초가을에 만개하는 해바라기 꽃이다. 큼지막한 얼굴에 해맑은 소년의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해바라기 꽃은 풍요로운 가을을 알리는 서막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언적(李彦迪)은 가을 해바라기 꽃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는 시를 한 수 남겨 놓았다.

가을 해바라기 꽃(秋葵)

開到淸秋不改英(개도청추불개영) 여름에 피어 맑은 가을 돼도 꽃 그대로인데
肯隨蹊逕鬪春榮(긍수혜경투춘영) 기꺼이 오솔길 따라 봄빛과 다투네
山庭寂寞無人賞(산정적막무인상) 적막한 산속이라 보아 줄 사람 없으니
只把丹心向日傾(지파단심향일경) 단지 붉은 마음을 해를 향해 기울일 뿐이라네

해바라기는 8월이 개화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르게는 6월부터 꽃이 핀다. 한여름에 핀 꽃이 초가을 9월에 접어들어도 싱싱함을 잃지 않는 장수 꽃이다. 시인이 기거하는 산 중에도 가을이 찾아 와서 주변 풍광들이 하나 둘 빛을 바꾸었지만, 오솔길 따라 핀 해바라기 꽃은 여름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싱싱한 자태는 봄꽃의 화사한 빛과 다투어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인적이 끊긴 산속에 피었는지라,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려야 뽐낼 데가 없다는 것이다. 봄꽃처럼 구경 오는 사람은 하나 없지만, 그래도 언제나 곁에 있는 든든한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낮 동안 내내 하늘에 떠 있는 해가 그것이다. 자신의 곁에서 언제나 지켜주는 해에 해바라기가 변치 않는 마음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을, 마치 이정표처럼 지키고 있는 것이 해바라기 꽃이다. 그 해맑은 미소는 그렇지 않아도 맑은 가을 하늘을 더욱 빛나게 한다. 국화처럼 아기자기한 맛은 없지만, 길가에 우뚝 서서 인심 좋아 보이는 인상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매력이 그 얼굴 크기만큼이나 큰 것이 가을 해바라기 꽃 아니던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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