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다락방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0.09.2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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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큰길에서 접어들면 논길을 따라 코스모스 꽃잎이 하늘거리고 길 양옆으로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다락방의 손바닥만 한 창으로 들어온 가을 풍경이다. 저 풍경 그대로 멈추게 하고 싶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내 삶의 모토이듯 이 숲 속에 집을 지으며 화려하거나 거창한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저 작고 아늑한 나만의 공간을 하나 갖고 싶었다. 그것이 다락방이었다. 다락방을 들이긴 했지만, 다락방이 아니라 창고로 전락한 지 3년이 넘었다. 이사하면서 버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물건들을 다 끌고 와 다락방에 처박은 것이다. 이사했다고 지인들이 들고 온 화장지도 다락방 차지였다.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 들여다보는 것조차 무서웠다.

그동안은 집 정리에 마당 손보느라 다락방까지 손이 못 갔다. 코로나19 덕분이라 해야 할지 때문이라 해야 할지 이사한 지 3년 만에 큰맘 먹었다. 버려도 아깝지 않을 책상, 쓰지도 못할 커튼, 이불, 옷가지들 다 버리고 정리하니 드디어 다락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락방이라 창도 손바닥만 하다. 그 창문 밑으로 선반을 달아 홈빠 흉내를 내 봤다. 그리고 다락방 뒤쪽으로 집 짓고 남은 흙벽돌을 쌓아 공간을 만들었다. 화가 이중섭이 제주도에서 살았던 방의 크기로 골방을 들인 것이다. 골방에는 볕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10촉짜리 전구를 달았다. 작은 카펫을 깔고 쿠션 두 개를 놓으니 아늑한 골방이 되었다. 창고가 꿈꾸던 다락방과 골방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제야 다락방 본연의 이름을 찾았다.

카렌시아란 말이 생각난다. 케렌시아는 투우장의 소가 투우사와 싸우기 전에 안식을 취하며 쉬는 공간을 말한단다. 대부분의 소는 투우를 끝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투우 경기 전 가장 조용하고 편안한 상태를 맞이하게 하는 장소, 투우장 한쪽이 바로 그런 곳이란다.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치열한 생존의 투우장인 것 같다. 삼십대의 우리 애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숨도 못 쉬겠다. 자신의 삶을 지키고, 키우고, 헤쳐나가는 일이 간단치가 않다. 직장은 다니지만 급변하는 사회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공부도 해야 하고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 또한 게을리할 수 없단다.

서울에 있는 딸아이가 주말에 다니러 와서 그 골방에서 달게 자고 갔다. 푹 쉬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몸이 가벼워진 듯하다. 작은 변화가 또 다른 세상이 된다. 단지 지저분한 것들만 버리고 조금 신경을 쓰니 지친 몸과 마음을 쉬고 세상으로 나갈 힘을 얻는 안식처로 변신했다. 창고에서 안식처로의 변신, 우리의 삶도 마음의 변화를 가지면 여유가 주어질 것이다. 남편은 골방에서 노는 나와 딸아이에게 넓은 방과 거실 다 놔두고 왜 작고 침침한 곳이 좋은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태초에 우린 웅녀였잖아요. 창가에서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며 가을풍경을 보는 이 즐거움을 사냥하러 밖으로 나가는 그대, 남자가 어찌 알리요.) 아늑하고 은밀한 공간, 혼자서 꿈꾸는 곳, 분주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겐 이런 공간이 필요하지 싶다. 극한의 스트레스에 다다른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삶,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나만의 다락방이 있다면 마음의 여유도 생기지 않을까 한다. 짧은 가을 나만의 다락방에서 가을풍경을 즐기리라. 한풀 꺾이고 있는듯하지만 언제 또다시 발톱을 세울지 모를 코로나19와도 격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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