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하다
秋하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0.09.2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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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세상을 사는 게 녹록지 않다.

못 배워서, 가진 게 없어서, 취직을 못 해서, 나이가 많아서 서럽다.

남들은 말한다.

배움이 짧으면 배우면 되고, 가진 게 없으면 벌면 되고, 취직은 눈높이를 낮추면 될 일 아니냐고.

말처럼 쉬우면 한숨이 나오겠는가.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는 `공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오죽하면 지난 19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 연설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37번, 불공정이라는 단어를 10번 언급했다. 문제는 공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국민과 다르다는 점이다. 청년기본법이 통과되며 올해부터 법정 기념일로 지정된 청년의 날이지만 정작 청년들이 원하는 공정을 정치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여전히 불공정하다는 청년들의 분노를 듣는다”며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며, 다 이루지 못할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해소하는 일이 한편에서는 기회의 문을 닫는 것처럼 여겨졌고 공정을 바라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공정에 대해 더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며 “청년의 눈높이에서 공정이 새롭게 구축되려면 채용, 교육, 병역, 사회, 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체감돼야 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방송에선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과 관련한 휴가 특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벌써 몇 달째다.

인터넷 포털에서 가을 추(秋)를 입력하면 추 장관과 관련된 내용이 쏟아진다. 씁쓸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정한 사회를 구현한다고 외친다. 어불성설이다.

며칠 전 만난 지인은 최근 입대한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부모로서의 자괴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힘 있는 줄도 없고 배경도 없는 단지 성실함을 무기 삼아 살아온 힘 없는 부모를 둔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다. 그저 자랑스러운 군인으로서 요령 피우지 말고 부끄럽게 살지 말라는 말밖에 전하지 못해 아쉬워했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 없는 청년들이 내세울 것은 열정뿐이다. 그래서 수많은 청년은 꿈을 안고 노량진으로 신림동으로 몰려든다. 개천에서 난 용이 아니어도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공무원 시험이기 때문이다.

가을 추(秋)라는 한자는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인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데 사람은 오를수록 고개가 올라가니 추하다.

가을이면 예전에는 독서의 계절이라며 책읽기를 권했다.

최근 영풍문고가 2015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5년간 매해 9~10월 베스트셀러 동향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베스트셀러 목록만 봐도 돌아가는 세상사를 읽을 수 있다더니 2015년에는 사회에 만연한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해 변화를 강조한 `미움받을 용기'가 인기를 끌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16년엔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이 베스트셀러 1위였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현 정부가 들어선 2017년엔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가 1위, `말의 품격'이 4위에 올랐다. 2018년 가을엔 `돌이킬수 없는 약속'이 1위였다. 2019년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해 화제를 모았던 임홍택의 `90년대가 온다'가 1위였다. 올해는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이 쓴 `돈의 속성'이 9월 2주 차 베스트셀러 1위다. 영혼까지 끌어다 모아도 집 한 채 못사는 현실에서 책으로나마 부자가 되고 싶은 서민의 마음이 반영된 것 같아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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