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씻으며
손을 씻으며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20.09.2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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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뽀얗고 토실토실하던 손녀의 손등이 까칠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갓 피어난 복숭아꽃처럼 해사하던 얼굴까지 푸석한 것 같다.

“우리 공주님 손이 왜 이리 까칠해졌어? ”

“할머니가 코로나 때문에 손을 자주 씻으라고 하셔서 너무 많이 씻어서 그런가 봐요.”

깔끔쟁이 손녀의 얼굴에 도래샘 같은 맑은 웃음이 번진다. 어린 마음에 코로나가 얼마나 걱정되었으면 손이 거칠어질 정도로 많이 씻었을까?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나는 요즈음 과할 정도로 손 씻는데, 신경을 쓴다. 몇 달째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손을 자주 씻으라는 질병관리본부의 메시지도 피로감이 생길 정도이다.

손녀의 손등에 크림을 발라주고 내 손등을 들여다보았다. 내 손등은 가을을 떠날 준비를 하는 마른 잎새처럼 서걱거렸다. 모양과 크기가 일정치 않은 검은 점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차지하여 주객이 전도된 듯 위세를 떨치고 있다.

굳이 감추고 싶지 않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자랑스러운 삶의 흔적으로 봐주고 싶다. 가족을 위해 김치를 담그느라 양념이 배고, 설거지에 물 마를 날 없었으며 자식들에 이어 손주들 기저귀 빨며 건강하게 키우느라 힘들었을 손이다.

손목을 세 번이나 다쳐 여러 달씩 깁스로 답답하게 가두어놓았고, 쉴 새 없이 쓴 탓에 엄지손가락 방아쇠가 고장 나 칼을 대어 수술을 받는 아픔까지 겪었으니 아마도 나를 많이 원망도 했으리라.

어머니의 손은 늘 거칠었다. 농사일하시느라 흙과 사시고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에도 고무장갑도 없이 도랑의 얼음물에서 빨래하셨으니 거칠어지고, 심할 땐 살이 터지지 않고 배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터진 손등 사이로 발긋발긋 피가 나도 밤이면 가마니를 짜시느라 손이 쉴 틈을 주지 않으셨다. 손이 아프다는 신음을 냈을 텐데도 어머니는 크림 한 방울을 바르지 않으시고 온전히 아픔을 견디셨다.

어머니의 손에 비하면 내 손은 호강이다. 사철 따뜻한 물이 지천으로 흐르고 힘든 빨래는 세탁기가 거들어주고, 고무장갑이 보호해주며 아침저녁으로 수고했다고 가끔 크림도 발라주니 얼마나 호강에 겨운 일인가?

어느새 나도 어머니의 손처럼 주름이 깊어간다. 어머니처럼 늙어가는 내 손이 좋다. 주인 잘 만나 비단처럼 고운 손으로 대우받고 알록달록 예쁜 손톱에 치장한 손을 볼 때면 예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치장 대신에 내 손이 나쁜 일에 쓰이거나 게으르지 않기를 바란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손, 이웃에게 도움이 되었던 어머니의 손이 되길 바란다.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훗날 내 자녀도 그렇게 떠올렸으면 좋겠다.

오늘도 열심히 손을 씻으며 손에 묻은 나쁜 병균을 씻어내듯 내 마음에 슬그머니 침입했을지도 모를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균까지 깨끗이 씻어내려고 비누 묻힌 손을 뽀득뽀득 소리가 나도록 힘껏 문지른다.

70평생 나를 원망하지 않고 수고해준 내 손에 감사하며 이제 손이 아파할 땐 휴식의 시간도 주고 크림도 꼼꼼하게 발라주며 사랑으로 보듬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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