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
게으름에 대한 찬양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0.09.2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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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장 (진천주재)
공진희 부장 (진천주재)

 

추석을 약 2주 앞두고 과도한 업무량을 호소하며 택배 분류작업 전면거부를 선언했던 택배기사들이 정부의 인력 충원 약속에 따라 이러한 결정을 철회하기로 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18일 입장문을 통해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지난 16일 택배업계 간담회를 열고 택배 종사자 안전과 보호조치 현황, 추석 배송준비 상황 등을 논의하고 분류인력 투입계획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며 `이번 대책이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미연에 방지하는 데 다소 미흡하긴 하지만 정부의 의지와 노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노조의 요구를 전향적으로 수렴하겠다는 우정사업본부의 입장도 수용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앞서 대책위는 17일 코로나19 유행으로 더욱 가중된 업무량 때문에 올 한 해에만 택배기사 7명이 과로사로 숨졌다며 21일부터 전국 택배기사 4천여명이 분류작업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선포했다.

이에 대해 일부 신문은 택배업계가 감염병 국면에 살인노동을 방치하면서 호재를 누리고 있다며 택배회사들은 늘어난 이익을 분류작업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OECD에 따르면 2018년 OEC D 회원국들의 연간 실제노동시간은 평균 1734시간이다.

한국은 1993시간으로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어 장시간 노동 3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1786시간(11위), 일본 1680시간(22위), 독일 1363시간(38위)이다.

독일의 연간 노동시간은 한국의 68% 수준인 셈이다.

운송수단의 발달로 공간이동 속도가 혁신적으로 빨라지고, 로봇과 AI 등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기계가 산업현장에 배치됐는데 왜 우리는 기계가 대체하는 노동시간만큼의 여가도 즐기지 못하고 여전히 예전처럼 과잉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한쪽에서는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고, 다른 쪽에서는 실업으로 고통받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1935년 출간한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현대의 기술은 임금 저하나 실업을 동반하지 않고도 하루 4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해준다며 그렇게 되면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에 소수 특권층에게만 부여되었던 게으름의 기회가 구성원 모두에게 제공되고 개인들이 근로의 미덕이 최고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누구나 즐겁고 가치 있고 재미있는 활동을 자유롭게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벨기에의 사회학자 자끄 러끌레르끄는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보이고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은, 뛰면서 되는 일도 아니고 군중의 소란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며 번다한 바쁜 일들 틈바구니에서 생기는 일도 결코 아닙니다. 고독, 정적, 한가로움이 있고서야 탄생도 있는 법입니다. 때로는 섬광 짓듯 생각이나 걸작이 피어나는 것도, 이미 오래고 한가로운 잉태기가 그에 앞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게으름뱅이 철학의 기본 원칙은 노동과 놀이를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1935년의 러셀이 2020년의 우리에게 묻고 있다.

`현대의 생산 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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