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두곡
노래 두곡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2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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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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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제페토.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 듣고만 있는데도 가슴이 찢어지는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는 인터넷 뉴스를 읽은 필명 `제페토'의 댓글 시 <그 쇳물 쓰지 마라>로 만들어진 것이다. 시집엔 그날의 뉴스 `7일 새벽 2시께 충남 당진군 석문면 한 철강업체에서 이 회사 노동자 김모(29)씨가 작업 도중 5m 높이의 용광로 속에 빠져 숨졌다. 당진경찰서에 따르면 숨진 김씨는 용광로에 고철을 넣어 쇳물에 녹이는 작업을 하던 중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용광로에는 섭씨 1,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겨 있어 김씨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 09. 07)'가 나란히 담겨 있다.

싱어송라이터 하림이 만든 이 노래의 처절하도록 슬픈 곡조를 글로는 절대로 전달할 수 없음이 통탄스러울 뿐이다. 다만 SNS를 통해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 함께하기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으니, 기꺼이 귀 기울이고 입을 열어 볼 일이다.

지옥 불이 실제로 있다면 용광로에서 검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듯 끓고 있는 쇳물과 똑같지 않겠는가. 어쩌다 죽음의 문턱을 더듬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은 지극히 가난하고, 정규직이 아니며, 하청이거나 특수고용직에게 두루 맡겨져야 하는가. `에밀레종'의 애절하고 잔인한 전설은 신비스러운 종소리와 함께 천 년이 넘도록 기억되고 있는데, 육신을 갈아 넣으며 허망하게 사라져야 하는 위험의 외주화는 너무 쉽게 잊고 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은 어느 누구라도 모두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세상과 처음으로 만나고 있다. 다가오는 추석은 귀향을, 평소에는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의 만남 또한 자제해야 하는 전혀 다른 명절을 요구하고 있다. 차단과 격리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 가슴 깊은 곳에 우리보다 가난하고 위태로운 세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기억하는 생각을 담아야 한다. 그리하여 비대면의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든든하게 서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누구를 위해 누군가/ 기도하고 있나 봐// 숨죽여 쓴 사랑 시가/ 낮게 들리는 듯해// 너에게로 선명히 날아가/ 늦지 않게 자리에 닿기를// I`ll be there 홀로 걷는 너의 뒤에/ Singing till the end 그치지 않을 이 노래/ 아주 잠시만 귀 기울여 봐/ 유난히 긴 밤을 걷는 널 위해 부를게// 또 한 번 너의 세상에/ 별이 지고 있나봐」<아이유. 러브 포엠(Love Poem)> 깊은 밤, 잠에서 깨어 아이유가 부르는 이 노래 <러브 포엠(Love Poem)>을 들었다.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노래처럼 우리는 어쩌면 서로가 익명이 되어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심정으로 유난히 쓸쓸한 추석연휴를 보내야 한다. 오지 못하는 자식과 손주들을 기다리며 송편을 빚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낡은 추억 같은 한과며 전을 부치거나 토란국을 끓이기 위해 촉촉한 흙을 일구며 분주했던 일상의 설렘조차 다가오지 못함을 황망해하는 남은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시간이다.

노랫말처럼 코로나19의 위험한 긴 밤을 외롭고 쓸쓸하게 혼자 지새야 하는 일은 추석 명절에도 피붙이를 만날 수 없음을 체념하는 일만큼 서러운 일. 어쩌면 고향의 부모님들은 오지 말라고, 자식들 건강이나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하면서도, 달그림자 문창호지에 어른거리는 마당을 서성이며 깊은 회한에 몸서리칠 추석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차분하거나 경건하게 함께 부를 노래, <그 쇳물 쓰지 마라>와 <러브 포엠(Love Poem)>. 그 선율을 읊조리며 긴 밤 누구라도 위로가 되는 편지를 쓰며 아주 다른 추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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