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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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익 교 <전 언론인>

오늘도 새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습니다. 아직 밖은 어두운데 산비둘기가 제일 먼저 소리를 냅니다.

다음이 뻐꾸기, 꾀꼬리 그리고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어우러져 자연의 하모니가 연주됩니다.

아침 기운을 뿜어내는 이 상쾌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잠겨 오늘에 할 일들의 순서를 정리해 봅니다. 어제 다못한 용뇌국화, 동과이식을 마무리 하고 등용초(식용꽈리)포트작업과 동암약쑥 삽목 등 등 일의 순서가 잡힙니다.

이쯤되면 날이 밝고 밖으로 나오면서 5년차 농부의 하루 일과가 시작됩니다.

지난 2003년 26년간 몸담았던 기자생활을 접고 조부님의 고향인 청원군 강내면 궁현리 일명 '방아다리'로 거쳐를 옮긴지 햇수로 5년째입니다.

청주시에 인접한 이곳은 생활양식이 도시와 농촌의 중간쯤 되는 그런 곳입니다.

도심권과는 20여분 거리인데도 고라니, 너구리를 볼수 있고, 한낮에 꿩이 울고, 겨울 밤하늘에 얼어붙은 별을 보며 부엉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처음 2년은 농사의 기본인 심고 가꾸기를 요령보다는 힘으로 하는 어설픈 얼치기 농사꾼이었습니다.

비록 손에는 호미와 삽을 잡았지만, 젊음과 청춘의 열정을 바친 신문쟁이의 때를 못 벗어 마음고생이 심했고, 이웃들과도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평소 자연과 더불음을 동경하고 특히 약용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분야 석학들과 전국을 돌며 식물탐사를 다니며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강산이 절반은 변하는 동안 차츰 범위가 넓어져 중국, 백두산 식물까지 접하게 되고,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약성이 우수한 약용식물들의 대량 번식을 위해 '바이오 약용식물 연구소'간판까지 걸었습니다.

지금은 때를 알고, 날씨를 보며 한낮에 뙤약볕을 피해 오전에 일을 몰아하는 일머리를 아는 약초전문 농사꾼이 됐습니다. 그리고 동네 대소사를 논하고 결정하는 개발위원, 황토방 위탁관리인, 단위농협대의원 일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1박2일로 농민교육도 다녀 왔습니다.

가끔 만나는 지인들은 "젊어 일하고 늙어 쉬어야지, 슬슬 노후준비할 나이에 무슨 일을 그리 하냐"고 안쓰러워 합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새소리에 깨고 별보고 달보며 사는 생활이 생각처럼 고달프지만은 않습니다.

전직과 인연을 끊다시피하다가 슬그머니 발을 디민 것은 친정이나 다름없는 '충청타임즈'가 제2의 출발을 하면서 내뿜는 용트림이 여기까지 울렸기 때문입니다.

달이 밝습니다. 멀리 은적산에서 올빼미 소리가 들립니다.

그렇게 시끌거리던 개구리들도 조용 합니다. 이렇게 5년차 농사꾼의 또 하루가 저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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